▲ 사진=조선일보DB, 책 표지 캡처

동양철학자 최진석 서강대 명예교수의 근간(近刊) 《최진석의 대한민국 읽기》(북루덴스, 2021)에는 현 집권세력의 잘못된 국정운영에 대한 쓴소리가 많다. 이념에 매몰되고 과거 역사에 갇힌 현 정권의 후진적 사고와 수구적 행태로 인해, 나라가 선도국가로 향해 가기는커녕 중진국 반열에서조차 뒷걸음질치고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그는 이 개탄스러운 시대를 이제 건너가야 할 때라며, 편협하고 획일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려면 사유와 지성과 시선의 '높이'가 올라가야 하고 그만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최 교수는 저서에서 "전체도 못 보고 넓게도 못 보는 이유는 넓지 않아서가 아니라 높지 않아서다. 우리는 이것을 무지(無知)라고 한다"며 "따뜻한 마음으로 산과 더불어 나란히 서 있다가는 산 옆구리만 조금 볼 수 있을 뿐이다. 시선의 높이를 끌어올릴수록 전체를 넓게 보는 능력도 올라간다"고 말했다. 이하 책의 핵심 대목을 옮긴다.

[지금은 모든 문제를 국제 경쟁 속에서 이해하고 해결해야 이익이 커지는 세상입니다. 그렇지만 시선이 높지 않아 국내에 갇혀 있으면, 문제를 국제 경쟁의 넓은 틀 위에 올려놓고 보지 못합니다. 국력이 더 강해지는 길을 갈 수가 없죠. 다 무지와 관련됩니다. 나란히, 더불어, 함께, 따뜻이, 곁에 있는 것보다, 좀 쌀쌀맞고 차갑더라도 높게 있어야 문제를 해결합니다. 시선의 높이가 결국은 실력입니다. (...)

촛불혁명은 실패했다. 혁명의 실패는 말의 실패이자 거짓말의 득세다. 문 대통령은 스스로 5대 인사 원칙을 지키겠다고 말해놓고, 처음 인사부터 지키지 않았다. 말은 신뢰이며 근본이기 때문에 거짓말 자체로 끝나지 않고 다른 모든 통치 행위에 끝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취임사는 국민을 향해서 하는 엄숙한 약속이지만, 다 거짓말이 되었다.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말은 김정은이 가장 깔보는 대통령이 되면서 거짓이 되었다. 거짓말하는 인격은 항상 현상 유지만 하면 된다는 유혹에 빠져 있기 때문에 미래를 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미래를 여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문 대통령은 '근혜 산성'과 '명박 산성'을 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 정부의 반헌법적 경찰 차벽에 가로막혔다"고 질타했지만, 자신의 실력도 '재인 산성' 이상이 못 된다는 것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거짓으로는 자신이 부정했던 과거 이상의 실력을 낼 수가 없다. 과거와 닮아가면서 혁명은 실패하고, 거짓을 강변하는 억지만 남는다.

북한을 민족 이익을 수호하는 국가로 보는 인식을 토대로 하여 우리가 형성한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종북굴중혐미반일(從北屈中嫌美反日)'이다. 북한을 추종하여 무조건 이해하고 편을 들며, 중국에 굽신거리고, 미국을 미워하며, 일본을 반대한다. 문제는 추종하여 이해하고 편을 들어주지만, 북한은 계속 위협하고 조롱하며 업신여긴다는 점이다. 세계 외교사 어디를 봐도 국가 사이에 이런 관계를 형성해서 자존을 지키거나 생존을 담보하거나 실익을 얻었던 예는 없을 것이다. 지금 이 나라는 자기 확신에 갇힌 몽환적 통치 때문에 '아무나 흔들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

정권이나 기업이 망할 때 외부의 공격을 받아 무너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의 모두가 스스로 망한다. 먼저 스스로 망하고 나서, 외부의 힘에 굴복한다. 선한 대중은 자신들이 사는 터전에 균열의 위험이 감지되면 경고의 호루라기를 불어준다. 그것이 '반대의 소리'다. 시위다. 바로 표현의 자유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에 입각해서 호루라기를 부는 대중에게 '살인자'라고 하면 안 된다. '살인자'라는 말이 튀어나왔다면, 이제는 마음에 드는 소리만 듣지, 마음에 들지 않은 호루라기 소리는 듣지 않고 증오하겠다는 뜻이다. 자신들을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살겠다는 뜻이다. 동네에서는 이렇게 해도 되지만, 국가는 이러면 안 된다. 이것이 망할 징조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