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2019년 2월 9일, 침팬지 떼가 덤불에서 휴식 중인 고릴라 암컷 3마리, 새끼 1마리를 습격했다. 고릴라들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침팬지와 맞섰다. 52분간의 혈투(血鬪) 끝에 결국 새끼 고릴라가 희생됐다. 비명과 고함을 지르며 승전(勝戰)을 자축한 침팬지 떼는 새끼 고릴라 사체(死體)를 전리품처럼 취해 서식지로 돌아갔다.
#.2 그해 12월 11일에도 침팬지 무리가 고릴라를 공격했다. 거구(巨軀)의 우두머리 수컷 고릴라도 재빠른 침팬지들의 마구잡이 공세에 지쳐 나무 위로 피신했다가 줄행랑을 쳤다. 암컷만이 새끼를 품고 고군분투(孤軍奮鬪)했지만 중과부적(衆寡不敵)이었다. 난리통에 새끼 고릴라가 또 죽었다. 암컷 침팬지 한 마리가 사체를 뜯어먹었다.
세부 종(種)은 다르지만 크게 유인원(類人猿·척추동물 영장목 진원아목 사람상과에 속하는 포유류. 침팬지와 고릴라, 긴팔원숭이 등)으로 묶이는 침팬지와 고릴라는 사실상의 동족(同族) 관계로 봐도 무방하다. 그런데 침팬지가 고릴라를 잡아먹는 이유가 뭘까. 코로나 광풍(狂風)으로 인한 살벌한 ‘동족 포식(捕食)’ 시대의 도래인가.
독일 오스나브뤼크 대학과 막스플랑크 연구소 공동연구진이 침팬지 무리의 사냥 행동 및 사회 관계를 연구한 결과, 침팬지의 고릴라 포식이 최근 진행된 ‘기후 변화’와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후 변화로 식량 쟁탈전이 심화되고, 결국 같은 부류의 동물들까지 서로 다투는 경향이 짙어졌다는 것. 이 같은 결과는 《네이처》의 자매지인 《사이언티픽 리포트》 최신호에 실렸다.
연구진은 아프리카 가봉에 있는 로앙고국립공원에서 침팬지 45마리를 대상으로 습성(習性)을 연구했다. 이들은 침팬지가 고릴라를 먹이로 사냥했을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봤다. 대신 자기들이 먹을 식량을 뺏어가는 적(敵)으로 여기고 공격했다는 것.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영장류(靈長類) 학자인 토비아스 데슈너 박사는 “로앙고국립공원의 침팬지와 고릴라, 코끼리가 먹잇감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때로는 서로를 죽이는 치명적인 상호 작용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유인원들의) 심화된 식량 경쟁은 최근의 기후 변화 현상과도 관계가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봉의 다른 열대우림(熱帶羽林)에서도 관찰됐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