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8일 서울 중구 명보아트시네마에서 탈레반 세력이 지배하는 아프카니스탄의 참혹한 여성인권 현실을 담은 영화 '천상의 소녀'(원제: Osama) 상영회가 열렸다.
'천상의 소녀'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으로 탈레반 정권이 붕괴된 후 2003년 첫 제작됐던 아프가니스탄 영화이다. 영화 제작이 금지된 탈레반 정권에서 벗어나 파키스탄으로 망명했던 세디그 바르막(Siddiq Barmak) 감독은 탈레반 정권이 무너지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때 신문에서 13살 소녀가 학교에 가고 싶어 남자로 변장했다가 발각됐다는 기사를 읽고 이 영화를 착안했다.
영화의 줄거리(결말 생략)는 다음과 같다.
탈레반 정권이 지배하는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열두살 소녀 레일라 소녀의 아버지는 전쟁에 나가 죽었고 남은 가족이라곤 할머니와 어머니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탈레반은 여자가 밖에서 일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한다. 카불 거리에는 하늘색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법 개정을 요구하는 여인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아랑곳없이 레일라 가족은 생계를 위협받는다. 할머니는 하는 수 없이 손녀에게 남장을 시키고, 레일라는 식료 잡화상에 겨우 취직한다. 한편, 탈레반은 군대 교련을 위해 소년들을 모두 학교로 소집한다. 소년으로 위장한 레일라도 참가하게 되는데, 동료들은 예쁘장한 외모의 그녀를 여자가 아니냐고 의심한다. 레일라를 좋아하던 한 소년이 그녀를 '오사마'란 이름을 가진 남자라고 적극 변론해준 덕분에 간신히 위기를 넘기는가 싶었지만 얼마 안가 교관에게 여자인 것을 들켜버리고, 레일라의 운명은 걷잡을 수 없는 비극 속으로 빠져든다.

상영회에 참석한 이장호 감독은 "탈레반의 재집권에 의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영화와 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마음 아프다"며 "아프간의 참혹한 현실이 지금 가까이 북녘 땅에도 벌어지고 있음을 기억하고 이들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말했다.
한 여성 청년은 "대한민국에서 여성인권을 외치는 이들이 정작 아프간과 북한의 여성인권은 외면한 채 페미니즘에 몰두하고 남녀 갈등만 조장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진정한 여성인권 운동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생명권과 자유권을 침해받는 여성들을 위해 목소리 내는 것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영화 '천상의 소녀'는 열악했던 제작 여건을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2003년 제작 당시 바르막 감독은 신인이었고, 거리에서 구걸하다 주인공 레일라 역으로 캐스팅된 마리나 골바하리(Marina Golbahari)는 영화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천진한 소녀였다. 그러나 마리나의 연기에는 그녀의 삶이 녹아져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탈레반의 고문으로 다리를 못 쓰게 됐고, 언니는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다. 어린 나이에 가장 노릇을 도맡아 할 수밖에 없었기에 다큐멘터리 못지않은 진정성을 표현해 냈다.
2003년 칸국제영화제 비공식부문인 감독주간에 초청된 이 영화는 황금 카메라상 특별언급상, 프랑스예술극장연합(AFCAE) 최우수 작품상, 주니어 심사위원 최우수 작품상의 세 개 부문을 석권했다. 또한 2003 뉴딜영화제 시네팬 최우수 여우주연상, 2003 런던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2004 시네마닐라 국제 영화제 최우수 여우주연상은 물론 2003 부산 국제 영화제 관객상과 뉴커런츠 특별상, 2004 골든 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비롯 다양한 영화제를 통해 여러 분야의 수상작으로 선정돼 전 세계인들의 인정을 받게 된다.
재임 당시 백악관에서 '천상의 소녀'를 본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 영화를 칭찬하며 모든 각료들이 반드시 관람할 것을 지시했다. 또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 연방 상원의원은 영화에 찬사를 보내며 아프간 여성들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워싱턴에서 직접 시사회를 주최하기도 했다. 이 사실은 미국 전역에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아프가니스탄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왜 탈레반의 재집권에 아프간 시민들이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하고, 여성들이 눈물 짓는지 알 수 있게 해주며 자유와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영화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