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항룡부 우승자 추예준 선수가 멋진 스윙을 선보이고 있다. 사진=김성태 PD·이신영 기자

연장전 끝에 승기(勝機)를 잡고, 예상치 못한 신예(新銳)가 올라서고... 새벽달 물러가는 여명(黎明)에서부터 군산의 겨울 하늘이 붉게 물들 때까지 경기는 ‘이변(異變)’의 연속이었다.

“PGA(미국남자프로골프투어)에서 우승하고 싶어요.” (추예준·강원 원주 구곡초 6) 

“우승했다고 해서 꿈인 줄 알았는데 조금 지나니 실감이 나요.” (임수민·경북 구미 문성초 6)

제2회 삼부토건배 어린이조선일보 골프대회가 지난 20일 군산컨트리클럽(전주·익산 코스)에서 성료(盛了)했다. 초등 골프 유망주 120명이 출전한 가운데, 우승·준우승을 비롯한 수상자 16명이 나왔다. 

학년과 성별에 따라 총 4부(항룡부: 고학년 남, 불새부: 고학년 여, 기린부: 저학년 남, 청학부: 저학년 여)로 나뉘어 18홀 스트로크 플레이(총 타수가 가장 적은 선수가 승리하는 경기 방식)에 의한 개인전으로 실시됐다. 

항룡부에서는 최근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선발된 추예준 군이 연장전 끝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준우승은 김혁준(경기 성남 보평초 6) 군이 차지했다. 이어 3위 김태휘(부산 센텀초 6), 4위 박재원(경북 김천 운곡초 6), 5위 신재욱(경기 군포 궁내초 6) 군 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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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줄 왼쪽부터 우승자 임수민, 추예준, 김주원, 남하은 선수. 뒷줄 왼쪽부터 이응근 삼부토건 사장, 금교돈 조선교육문화미디어 대표, 강전항 한국초등학교골프연맹 회장. 사진=김성태 PD·이신영 기자

불새부에선 임수민 양이 우승컵을 안았다. 준우승 윤예은(전남 여수 경호초 6), 3위 이시은(제주 중문초 6), 4위 정다나(경기 남양주 가곡초 6), 5위 김하은(경남 창원 무학초 6) 양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기린부에서는 우승 김주원(인천 송원초 4), 준우승 김태호(경기 동탄 중앙초 3), 3위 김하온(충남 천안 새샘초 4) 군이 이름을 올렸다. 청학부에는 우승 남하은(서울 구룡초 4), 준우승 신진영(서울 압구정초 4), 3위 박효담(경남 진주 초전초 4) 양이 차지했다.

우승의 쾌감 못지않게 뜨거운 友情 돋보였던 경기들 

바람 앞에서도 안정적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물론, 우승을 놓고 겨루는 경쟁자에게도 응원을 아끼지 않는 정다운 마음까지. 어린이 골프 꿈나무들에게서 대한민국 골프의 빛나는 미래가 보였다.

지난 20일 군산컨트리클럽에서 ‘제2회 삼부토건배 어린이조선일보 골프대회’가 열렸다. 전날까지 내린 폭설로 필드에 눈이 쌓여 대회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다행히 정오를 넘기며 기온이 올라 필드엔 다시 초록빛 잔디가 드러났다. 지난달 8일 기상악화로 취소됐던 대회가 또 열리지 못할까 가슴을 졸이던 선수들도 경기 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밝은 모습으로 하나 둘 경기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우여곡절 끝에 열리는 대회인 만큼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한 선수들의 비장함도 엿볼 수 있었다.

대회는 네 개의 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학년과 성별에 따라 항룡부(초등 고학년 남자), 불새부(초등 고학년 여자), 기린부(초등 저학년 남자), 청학부(초등 저학년 여자)로 구성됐다. 경기는 총 18홀 스트로크 플레이(총타수가 가장 적은 선수가 승리하는 방식)로 치러졌으며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을 위해 시간대별로 티오프(tee off·제1타를 치는 일) 시간을 달리했다. 이날 선수들은 각자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끝까지 경기에 최선을 다했다.

연장전까지 치열했던 항룡부

오전 9시 40분, 항룡부 1조 첫 번째 선수인 반기남 군이 1홀에서 티업(tee up·골프에서1타를 치기 위해 공을 티에 놓는 일)을 시작했다. 첫 순서인 만큼 조금 긴장된 분위기 속에 기남 군이 힘차게 스윙했다. “굿 샷!” 주변 선수들의 응원 소리와 함께 골프공이 멀리 포물선을 그려 날아가면서 본격적인 대회 시작을 알렸다. 1조의 티오프에 이어 2·3조 경기도 순조롭게 이어졌다. 선수들은 경기 도중 골프채를 들어 거리를 재보는 등 1타를 칠 때마다 진지하게 임했다. 우승에 대한 기대감도 한껏 안고 있었다. 다른 또래보다 키가 월등히 커 돋보였던 진호영(경기 화성 월문초 6) 군과 4조 선수들은 모두 첫 홀 티업을 앞두고 “우승하고 싶어요.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며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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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룡부엔 ‘죽음의 조’도 있었다. 국내 유수(有數)의 골프대회에서 여러 차례 입상(入賞)했던 선수들로 구성된 6조 선수들은 티업 직전까지 서로 지난 대회를 회상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우승을 다투는 ‘에이스’ 선수들이지만 대화를 나눌 땐 영락없는 초등학생이었다. 이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도 티오프가 진행되자 순식간에 집중력을 발휘했다. 김태휘(부산 센텀초6) 선수의 깔끔했던 첫 스윙 이후 나머지 선수의 티샷에도 “굿 샷!”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추예준(강원 원주 구곡초 6) 군은 이날 경기 초반부터 “그린이 얼었었나요?” “오늘 맞바람은 센 편이에요?” 등을 물으며 꼼꼼하게 경기 환경을 점검했다.

이날 경기장에는 제법 거센 바람이 불었다. 손제이(부산 가동초 5) 군은 “바람이 왜 이렇게 많이 불어”라는 말을 반복했다. 제이 군은 경기 초반 버디(파보다 1타 덜 친 타수)를 세 개나 기록했지만 이어진 보기(파보다 1타 더 친 타수)에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거리 측정기로 공의 방향과 거리를 주기적으로 살피는 등 프로다운 면모를 보이며 잇따른 버디 기회를 잡았고, 점수를 따내며 격차를 좁히기도 했다. 

점심시간이 지날 무렵엔 아이들이 말을 나누기도 했다. 아침을 많이 먹어 배가 하나도 고프지 않다던 예준 군은 “배가 고프다”는 제이 군의 말에 자신이 챙겨온 도시락 가방을 직접 열었다. “초콜릿 줄까? 아니면 다른 거 먹을래?”라며 제이 군을 살뜰히 챙겼다.

경기 후반, 더블 보기(파보다 2타 더 친 타수)를 기록한 예준 군은 다른 조에 자신보다 높은 점수의 선수가 없다는 걸 확인하고는 “그럼 제가 거의 우승이에요?”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이내 “파(par·한 홀의 표준 타수)만 한다는 생각으로 경기를 치를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런 간절함이 통했다. 예준 군은 5번 홀에서 버디, 6번 홀 파, 7번 홀 파, 8번 홀 버디를 기록하며 안정감 있는 플레이를 선보였다. 항룡부 경기는 오후 2시 40분에 종료됐다. 

6조에서 1위를 확정 지은 예준 군은 스코어 카드를 확인하기 전까지 우승을 확신했다. 운영본부가 있는 클럽하우스 앞에서도 예준 군을 향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갑자기 주변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예준 군과 동점을 기록한 선수(김혁준·경기 성남 보평초6)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예준 군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연장전에서 승부를 가르게 된 두 선수는 모두 긴장한 모습이었다. 특히 예준 군은 “가슴이 터질 것 같다” “다리가 후들거린다”며 “1등을 두 명에게 똑같이 주면 안 되느냐”고 간절함을 표현했다. 혁준 군은 “연장전이 떨리지만 예준이와 몇 번 같이 친 적 있으니 재밌게 칠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난 시각, 모두가 숨죽이며 지켜보는 상황에서 연장전이 시작됐다. 약 두 시간이 흐른 뒤, 연장 1라운드 끝에 예준 군이 버디를 기록하며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접전 끝 반전, 긴장의 연속 불새부

“파이팅!”

불새부 경기의 포문(砲門)은 7조 선수들의 힘찬 외침으로 열렸다. 바람이 불자 선수들은 잔디를 공중에 날렸다. 바람의 방향을 확인한 후 자세를 잡기 위함이었다. 선수들의 얼굴엔 긴장감이 역력했지만, 거리 측정기를 꺼내들고 그린 위에 꽂힌 깃발을 쳐다보는 눈빛만은 침착했다. 1번 홀 티샷(티잉 그라운드에서 공을 치는 것)을 끝낸 네 명의 선수들은 “처음 티샷할 때 진짜 떨리는데, 그 다음부터는 괜찮아지더라”며 언제 긴장했었냐는 듯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아직 눈 내린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있던 6번 홀. 우승 후보가 포진한 11조의 선두는 현세린(경기 용인 석성초 6), 이시은(제주 중문초 6) 양이었다. 하지만 11번 홀에서 두 선수 모두 페널티 구역(1벌타 구역)에 공이 빠지는 위기를 겪었다. 둘은 차분히 드롭샷을 날렸다. 그린에서 세린 양이 반복된 퍼팅으로 더블 보기를, 시은 양은 파를 기록했다. 경기위원들 사이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됐던 세린 양의 경우 “바람이 많이 불어서 조금 힘든 것 같다”면서도 “끝까지 잘할 수 있다”며 결의(決意)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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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18번 홀에선 조별로 희비(喜悲)가 엇갈렸다. 8조 최서현 양은 “슬픔의 마지막 홀”이라며 “점수가 별로 좋지 않아 아빠가 실망하실 것 같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반면 9조 경기에선 18홀 티샷 후 서로 “나쁘지 않다” “괜찮게 나갔다”는 말을 주고받았다. 꾸준히 3~4타 차이가 나던 세린·시은 양의 격차는 마지막 홀에서 단 2타로 좁혀졌다. 다른 조의 결과를 모르는 상황에서 경기를 진행하니, 11조 네 선수는 서로의 점수를 기준으로 우승을 가늠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력한 우승 후보가 많은 조였기 때문에 마지막 홀의 결과에 집중한 모습이었다. 김나라(경기 김포 푸른솔초 6) 양과 양아연 양(대전 원평초 5)의 퍼팅 이후 그린 위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은 상황. 경기위원과 취재진은 그린 밖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채 마지막 퍼팅을 지켜봤다. 두 사람 모두 18홀에서 파를 기록한 끝에 시은 양은 이븐을, 세린 양은 2오버파로 경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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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은 양의 우승을 예감하며 클럽하우스로 돌아왔지만 예상치 못한 이변이 선수들을 맞이했다. 총 1언더파를 기록한 10조 임수민(경북 구미 문성초 6) 양이 최종 우승의 주인공이었다. 수민 양은 페널티 구역에 빠진 적 없이 안정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그는 “전반이 끝날 때쯤 3위 안에는 들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승이라니, 꿈인 것 같다”며 들뜬 기색을 보였다.

일침과 찬사로 선의의 경쟁 펼친 기린부

저학년 경기는 오전 11시 전후로 시작됐다. 기린부 첫 번째 조는 카트를 타고 홀에 도착하는 다른 팀과 달리, 어린 패기(覇氣)와 위풍당당함을 뽐내며 대기 장소에서부터 티잉 구역까지 힘차게 걸어 들어왔다. 대회 관계자에게 “안녕하세요!”라고 외치는 이들의 모습은 작지만 용맹한 아기 호랑이 같았다.

선수들은 필드에서 경기를 치르면서 “오, 나이스 샷인데?” “공 방향이 옆으로 휘었다!”고 말하는 등 일침과 찬사를 반복하며 집중했다. 3번 홀과 4번 홀에서 연달아 파를 기록한 강건(전북 전주 온빛초 4) 군과 김하온(충남 천안 새샘초 4) 군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어리지만 열정의 불씨만큼은 대단했던 기린부. 홀마다 가장 먼저 티잉 구역으로 뛰어 들어온 김주원(인천 송원초 4) 군은 추운 날씨로 발갛게 익은 볼을 매만질 틈도 없이 경기에 매진했다. 주원 군은 10번 홀에서 “아직까지 제가 스코어 1위를 달리고 있다”며 “우승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조용히 미소 지으며 우승을 예감하던 주원 군은 ‘말에는 힘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실제로 기린부 전체 최종 1위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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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앞에 초콜릿으로 ‘동료애’ 다진 청학부

기린부 티오프가 끝나자 청학부 경기가 시작됐다. 체격은 앞서 경기를 진행한 고학년 선수들과 기린부에 비해 왜소했지만, 스윙 소리는 바람을 가르며 매섭게 이어졌다. 5번 홀 그린 구역에서 맞바람이 몰아치자 선수들은 “바람아 그만! 바람 불기 전에 빨리 퍼팅하자!”고 외치며 각오를 다졌다. 

한편 “(그린에) 올라갔다. 퍼팅만 잘하면 돼!”라고 외치던 김아란(경기 용인 중일초 4) 양은 공을 만지작거리며 더 나은 퍼팅 위치가 어디일지 고민했다. 보기를 기록할 땐 “아!” 하고 짧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점심을 먹지 않았는데도 골프 칠 힘은 거뜬하다”며 다음 홀에서의 경기를 씩씩하게 준비했다.

16번 홀에서 ‘어프로치 샷(결승점인 ‘그린’을 향해 공을 치는 기술타들)’을 선보이던 전강주(서울 동자초 4) 양은 자신이 친 공이 몸에 부딪혀 다른 선수의 공을 튕겨냈다. 이로 인해 ‘벌타(罰打)’를 받을 뻔 했지만, 다른 선수의 공을 고의로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아 넘어갔다. 강주 양은 순간 긴장한 듯 보였지만 묵묵히 다음 경기를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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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학부에선 만족스럽지 못한 경기 실적을 받더라도 실망하는 선수가 없었다. 오히려 서로 초콜릿을 나눠 먹으며 동지애(同志愛)를 보였다.

우승은 남하은(서울 구룡초 4) 양에게 돌아갔다. 4번 홀에서부터 묵묵히 경기를 이어가며 스코어 1위를 유지하던 하은 양의 노력이 빛나는 순간이었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이 카트를 타고 클럽하우스 앞으로 귀환하자 부모님들은 “힘들었지? 수고했어”라고 말하며 자녀들을 따뜻하게 안아줬다. 승패와 상관없이 모든 선수들의 입가엔 웃음꽃이 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