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책 표지 캡처

오는 4일은 절기상 입춘(立春)이다. 예로부터 이날이 봄의 시작이라 하였다. 새해가 밝은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겨울이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때가 된 것이다. 짧지만 소중했던 설 연휴를 마무리하는 오늘, 포근한 봄날을 기대하며 근간(近刊)된 시집을 읽어보자. 작년 말 발간된 《영원이 어떻게 꽃 터지는지》(안영희, 문예바다), 《이상한 나라의 샐러리》(오광석, 걷는사람)와 《그대에게 물들기도 모자란 계절입니다》(서호식, 천년의시작)를 권한다. 전통 서정미학과 미래파적 상상력을 고루 느낄 수 있다.

시인 안영희는 시집 발문에서 "7년 동안 도예작업에 매료됐고, 흙과 불이란 본질의 한 세계를 발견했다. 그러고는 남들보다 먼저 자연이, 내게로 열려 왔다"며 "문득 고개를 들면 하루 해는 다하고 늘 눈 닿는 거기 하늘엔, 홀연 우주의 한 문장이 떠 있곤 했다"고 회고했다.

문학평론가 김정빈은 오광석의 시세계에 대해 "시인은 현실을 견디는 힘이자 상상을 펼칠 수 있는 공간, 나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방식으로 시 쓰기를 내놓은 것"이라며 "이상한 나라의 마지막에는 제주의 모습이 펼쳐진다. 시인은 비자림로, 광치기해변, 다랑쉬 마을로 돌아오며 제주 위에 드리운 겹겹의 층위를 시로 기록한다"고 논했다.

시인 유은희는 "서호식 시인의 시는 산책로의 순한 바람결 같기도 해서 읽는 이의 마음을 간지럽힌다. 그 특유의 서정성으로 작고 낮고 미약한 것들을 어르고 만져 시적 대상들로부터 은은한 풍경 소리를 울리게 한다"며 "그 파장은 아득하고 깊다. 때로는 유쾌하게 때로는 감각적으로 때로는 다정하게 때로는 쓸쓸하게 독자의 감성을 조이고 풀어 조율한다"고 평했다. 이하 위 세 시집의 대표작 1편씩을 소개한다.

1. 안영희 - 별

닫힌 강문江門의 물은
둑을 치고 범람하고

씨앗 몇 알을 위해
한 해 여름이 하늘로 오른 초록의 저 사닥다리
나팔꽃덩굴은 죽는다

밤 깊어 젖어 버린 내 영혼의 자리
더듬어 앉는 저 눈빛들은

누구의 가슴 치며 울던
티끌 같은 불씨인가

2. 오광석 - 따뜻한 북극해

가끔 북극항로를 여행하네
하루가 고단하고 지칠 때
시린 바다로 떠나는 거야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깊은 동해를 거슬러 올라
사할린섬 꼭지에서 동쪽으로
오호츠크해를 건너야 해
캄차카반도 남쪽 끝을 돌아
다시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대륙과 대륙 끝이 만나는
베링해협을 지나지
정북방향으로 키를 잡고
항해를 하다 보면 마주치는
부서져 떠다니는 거대한 빙하
둥둥 떠다니다 녹아 사라지는
얼음들을 헤쳐 항해를 하네
그리 춥지는 않아 북극의 바다는
사고 접수지가 쏟아지는
재난 같은 하루 일과를 끝내고
드러누워 바라보는 북극의 바다는
사방이 막힌 원룸 같은 배 안에서
노곤한 항해사는
항로를 탐색하다 잠이 드네
긴 항해의 날들을 꿈꾸는
밤의 항해사는

3. 서호식 - 수제비

가랑비 내리는 날이면
하늘 지붕 숭숭 뚫린 구들방에서
빗소리를 뜬다

감춰 두었던 이야기들이
밀가루처럼 쏟아지는
늙은 흙벽에서
어머니 해소 천식을 뜬다

옛 맛 그대로 걸쭉한
이 나간 사발 속에서
어머니를 건져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