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월 16일 미국 워싱턴에서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첫 대면 정상회담 상대로 일본의 스가 총리를 초청했다. 사진=미 백악관 유튜브 캡처

◇ 서구에서의 패권 이동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들이 실크로드 상권을 장악하던 시기, 유럽 대륙의 서쪽 끝 나라들은 서러웠다. 이제 꼭 필요해진 후추 등의 향신료가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한다는 것은, 수많은 중간상인을 부유케 한 반면 이들 국가 재정에는 큰 손실이었기 때문이다. 원산지에 직접 접근함으로써 게임의 룰을 바꾸고 싶었던 이들의 니드(Need)는 원양항해 기술 개발을 통한 대항해 시대로 이어졌다. 이것이 그간 근근이 살아왔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해양 패권국으로 전세계를 누비며 호시절을 보내게 된 계기였다.

대단했던 대항해 시대의 주역들로부터 패권을 넘겨받은 나라는 신생독립국 네덜란드였다. 알함브라 칙령(1492년)에 따라 스페인으로부터 추방당한 유대인들의 새로운 터전이자, 이들이 자금과 기술을 제공한 동인도 회사의 발상지였던 네덜란드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통해 국제 중계무역을 장악하며 황금기를 누렸다.  

다음은 산업혁명 이후의 공산품 대량생산, 스페인 무적함대를 이긴 해군, 동인도 회사로 무장한 영국으로, 이들은 해가 지지 않은 대영제국의 시대를 구가했다. 뒤늦게 통일을 이룬 독일은 영국이 75년간 해낸 산업혁명을 30년 만에 마치며 급부상했고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영국의 패권을 도전했다. 

영국은 나치 독일의 무시무시한 도전을 맞서며 축적한 국부와 체력을 소진했고, 이후 엄청난 공업력에 근간해 유럽과 태평양 전쟁의 승리를 이끌었던 미국에게 패권을 양도했다. 이후 미국은 민주주의와 자유무역이라는 가치를 선도하며 냉전에서 승리했고, 패권을 이어오고 있다.  

과감하게 축약한 국제 패권 이동의 스토리 내에서 과감하게 선별한 함의는 다음과 같다.  

우선 양지를 음지되게 음지를 양지되게 하는 국가 실력의 중요성으로, 국가의 흥망성쇠는 향후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시스템과 기술을 누가 먼저 도입 발전시키는가와 직결된다. 다음으로 인재는 한 국가가 이후 시대의 게임의 룰을 선도할 지를 결정하는 금쪽같은 존재이다. 이에 인재를 키우고 존중하는 나라와 억압하는 나라의 성패는 명약관화이다. 또한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는 국가는 망한다는 것으로, 복잡다단한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일본이다. 유럽 패권의 이동과 일본 대외전략의 역사가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 패권국과 일본

16세기 중반 일본 다네가시마의 15세 영주는 포르투갈 상인으로부터 지금 돈 10억을 주고 철포를 구매했고, 이것은 당시 해양 패권국과 일본 간 교역의 시작이었다. 또한 젊은 영주는 인재를 불러모아 분해와 역조립을 반복하며 철포 대량생산의 기반을 마련했고, 이후 동아시아의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네덜란드는 포르투갈로부터 아시아 무역권을 넘겨받았고, 이후 일본의 무역 파트너가 되었다. 일본의 주요 수입품은 책과 무기로 이것은 각각 지식혁명과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며 일본의 본격적 부국강병을 가능케했다. 네덜란드의 주요 수입품인 도자기는 장인을 선대했던 일본 잔류를 결정했던 조선 도공들의 작품들이었다. 

아편전쟁에서 영국이란 나라가 청나라군을 이겼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의 관심은 네덜란드의 짧은 황금기를 마감시켰던 영국을 향했다. 당시 영국은 도전국 차르 러시아와의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에 여념이 없었고, 시베리아 철도를 깔며 극동 부동항을 향해 뻗어 나가는 차르를 막기 위해 일본을 주목했다. 영일동맹은 이와 같은 영국의 필요와 영국과 러시아 중 이길 나라와 위협적인 나라를 구분한 일본 측 안목의 결과였다. 결과는 러일전쟁 승리와 을사조약이었다. 

포르투갈와 네덜란드에 이에 영국과 친하게 지냈던 선배들과 달리, 군국주의 일본은 영국의 패권을 도전하는 나치 독일을 선택하며 미국에 도전했다. 군국주의 일본의 의도가 그러했던 것처럼 패배할 나쁜 측과 함께 했던 나쁜 선택으로, 결과는 두 발의 원자탄과 무조건 항복이었다. 

이후 일본의 대외전략은 일관적이다. 평화헌법 일본은 미국이 제공하는 안보환경 내에서 경제발전을 이뤘으며, 미국의 외교안보 전략에 적극 협조했다. 특히 기존 패권국 미국과 부상하는 중국 간의 균형을 모색하던 역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중국과의 지정학적 이익 충돌 가능성을 직시하며 미국과의 공조를 강화했다. 

그 결과 미국과 태평양 전쟁이라는 끔찍한 과거를 공유한 일본은 미국의 신뢰를 얻으며 혈맹 한국을 대체하는 미국의 최고 안보 파트너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위대의 역할이 확장되었고, 평화헌법 폐지가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의견이 논의 중이다. 

일본은 외교안보 전략은 타국의 의도와 힘을 정확히 측정하며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현실주의 국제정치 이론에 부합한다. 일본은 동맹이라는 기존의 약속, 가치와 안보이익, 역량을 종합해서 미국과 중국 중 선택했고 지금은 미국과 함께 힘을 다한다. 쿼드(QUAD)에서의 일본의 지위, 바이든 대통령과 스가 총리의 정상회담 내용은 이를 반영한다. 

일본은 지금 한미관계 균열이 일본의 전략적 가치 상승의 기회임을 알고 있으며, 미국과 함께 중국의 부상을 저지한 후 자국이 아시아 1등이 될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국가이익 추구 과정에서 원폭과 플라자 어코드(Plaza Accord)등 미국으로부터의 상처가 자리할 여지는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과거 일본이 각 시기 주요국들과 교류했던 것은 그들이 지구 반대편까지 와서 무역을 할 수 있었던 해양 패권국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새로운 문물 도입과 부국강병에 대한 일본의 열정이 중요했겠지만 말이다. 지금 일본은 역사 경험과 국제정치 이론을 총동원해 적극적으로 국가안보전략을 세우고 매진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기회는 같은 지역의 우리에게 역시 주어졌으나 놓쳤던 기회였다. 또한 현 시점 우리의 안보이익은 더욱 첨예하며, 일본과 무관치 않다. 국가는 죽고 살 수 있는 유기체다. 우리와 사랑하는 다음 세대의 생명과 재산, 자유와 번영을 위해 지금 차가운 머리로 역사와 현실을 살피며 국가의 나아갈 방향과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