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개구리'.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의 작품으로, 중국의 산아제한 정책인 '계획생육'의 실무자로서 농촌 마을을 돌아다니며 임신부를 납치해 강제로 임신중절수술을 해야 했던 한 산부인과 의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모옌의 소설 '개구리' 속 고모는 열혈 의사이다. 그녀는 산파가 출산을 돕고 계란을 받아 가던 고향 마을에서 현대식 진료를 시작한 첫 산부인과 의사였다. 독실한 사회주의자였던 고모는 의사로서 또 혁명주체로서 '계획생육'(한 자녀 정책)에 헌신했다. 

그의 삶은 고달팠다. 둘째를 임신한 마을 아주머니들을 잡으러 다니는 수사반장이기도 했던 고모에게, 아들 출산으로 대를 잇고자 하는 딸 아빠 및 가족들의 테러는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몽둥이에 머리를 맞고 가위에 허벅지를 찔리면서도, 뒤늦은 낙태로 위험에 빠진 산모에게 헌혈하면서도, 고모는 인구조절이 사회주의 대국 건설의 선결 과제이며 인류를 위한 중국의 책임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청춘을 바쳐 마을에서의 둘째 출산을 막아냈다. 

국가가 개인의 삶 깊이 관여한 유례없는 인구정책과 그 가운데 있었던 수많은 눈물은 이후 중국의 부상과 무관치 않다. 위로는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 아래로는 한 자녀 정책이라는 초유의 인구 감소 상황으로 인해, 개혁개방의 주역들은 노인을 모시고 아이를 양육하는 부양책임으로부터 상당히 가뿐하게 경제발전에 매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중국의 인구학적 고민

지난주 발표된 2020년 중국 인구 센서스 결과에 따르면 중국의 연평균 인구증가율은 0.53%로 역대 최저이다. 신생아 출생 인구 역시 1961년 대기근 이래 최저로, 계획생육 폐지가 출산율 증가로 이어지지 않았음을 반영했다. 이에 대해 국가통계국장은 출생률과 출생인구 하락 추세, 노동 인구와 가임여성 인구 축소, 노령화 등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했으며,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이 예상보다 이른 인구 도전에 직면했다고 평가했다. 

녹록지 않은 여건 속에서 한 자녀 양육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향후 출산율 증가를 주도할 것이란 예측은 어렵다. 이에 급속한 고령화 현상과 노동 인구 감소는 저렴한 인건비를 통해 경제성장을 견인했던 제조강국 중국에는 존재론적 고민이다. 또한 선진국 대열에 진입 전(前)인 중국에 있어 노후 준비가 미비한 대규모 인구는 국가재정의 큰 부담이다. 특히 노인 부양을 개인이 담당해야 할 경우, 외동 부모를 가진 외동 커플이 양가 조부모까지 12명의 어른을 부양해야 한다는 다소 곤란한 계산이 가능하다. 높은 도시 집값과 취업 경쟁으로 이미 먹고사는 일이 만만치 않은 상황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인구학은 운명'(Demography is destiny)이라 했듯이, 인구통계는 각 국가가 장래에 직면할 인구학적 도전을 예고한다. 이것은 '중국제조2025'의 주요 동기로, 중국은 노동집약 제조업 중심의 기존 산업구조를 하이테크 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노동력 감소와 인건비 상승이라는 인구학적 고민을 타개하고 국가경쟁력을 제고하고자 한다. 그러나 미중 패권경쟁과 코비드19 이후 심화된 탈중국(de-coupling China) 추세 속에서 중국이 산업고도화를 달성하며 부상을 지속할지는 향후 관찰 과제이다. 

◇ 그렇다면 한국은?

사실 남의 집 일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2020년 대한민국 출산율은 세계 최저인 0.84로, 출산율이 사망률보다 낮은 인구감소 구간에 본격 진입했다. 생산과 납세, 병역 의무를 전담해야 하는 다음 세대도, 긴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어른 세대에게 모두 힘든 상황이다. 수많은 정책제안과 예산편성은 백약이 무효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산과 양육은 국가가 관여할 수 없는 개인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자녀 출산과 양육은 출산 장려금과 무상급식 등의 복지로 결정하고 실행할 사안이 아니다. 그것이 설령 국가로서는 큰 선심일지라도 말이다. 필요한 것은 앞으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낙관 그리고 내 자녀의 삶도 상당히 괜찮으리라는 기대이다. 이것은 내 삶을 책임지겠다는 혹은 모두 다 잘 사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큰 국가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국가는 증세와 규제를 통해 민간 경제를 고달프게 만들고, 결국 모두 다 가난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중국이다. 역사에 만약(if)은 없지만, 계획생육이 없었다면 중국은 인구압력으로 인해 가난을 면치 못했을까? 대다수의 국가에서 그러했듯이 공업화와 도시화 그리고 여권 향상 과정에서 출산율은 자발적으로 감소하며, 인구학적 충격 역시 완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추구하는 독립적 개인의 자발적 선택으로 말이다.  

소설 속에서 계획생육은 중국과 중국인의 행복을 위한 것이었으나 고모와 둘째를 낳지 못한 엄마들은 행복하지 못했다. 또한 지금의 인구학적 고민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곳에서 역시 마찬가지다. 국가가 우리 행복을 위한 것이라며 무엇을 할 때마다 행복과 자유가 축소되고 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건국의 아버지들이 양도불가한 권리로 생명과 자유, 행복 추구을 지목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국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줄 수 있으며, 그것은 개인의 영역을 존중하는 국가의 철저한 자기절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