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세력으로부터 영토를 재탈환한 스페인 왕조는 1492년 알함브라 칙령을 발표하며 자국 내 8만여 유대인을 추방했다. 이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며 신앙의 자유를 이뤄낸 네덜란드에 정착했다. 인재를 포용하는 네덜란드에서 유대인들은 동인도회사와 주식거래소 설립을 주도했고, 이들이 제공한 효율적 무역 시스템은 네덜란드 황금시대(Golden Age)의 비결이었다.

영국으로 향했던 유대인들은 후에 역시 박해를 피해 영국에 도착했던 프랑스 위그노들과 함께 산업혁명을 이끌었다. 금융과 상공업 경력을 통해 특화된 자본과 재능을 통해서 말이다. 프로이센과 스위스에 정착한 유대인과 위그노 역시 상업활동과 세공기술 등을 통해 해당 지역의 부국강병에 기여했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은 멋진 백자를 얻고 싶었던 영주의 선대 하에서, 독점적 생산권을 가진 사무라이가 되어 아름다운 백자를 생산했다. 이들의 백자는 해당 지역을 부유하게 만들며 혁신을 거듭했고, 이후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유럽에 전해져 그곳 도자기 시장을 석권했다. 자신을 천대하던 조선으로 돌아가는 대신 일본에서 재능을 꽃피웠던 조선 도공들은, 일본이 서적과 무기 등의 서양 문물을 수입할 수 있는 자본을 제공했으며 '대은인'이라고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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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의 위그노 박해를 그린 이자벨 아자니의 영화 '여왕 마고'에는 위그노와 함께 훗날을 도모하는 유대 자본가가 등장한다.

 

1946년 북한은 '무상몰수 무상분배' 방식의 토지개혁을 했다. 무상몰수라는 폭력성 그리고 '토지 매매 불가' 원칙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많은 이들이 월남을 택했다. 사유재산을 보장하지 않는 시스템하에서 개인은 국가의 노예임을 -큰 토지를 몰수당한 지주이건 작은 토지를 분배받은 농민이건- 직관적으로 깨달았던 이들은, 당시 북한보다 3배 가난했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주요한 자산이 되었다.  

여권도 인터넷도 없이 고향을 떠나야 했던 이들에게 참으로 고단한 길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자신들을 포용해주는 어떤 곳에 정착했고 재능을 꽃피웠다. 이는 보답을 위해서가 아니라 개인적 동기에서 발로한 것으로, 핵심은 신변의 안전과 소유권을 보장하는 정치·경제적 자유 즉 인간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멋진 토양이었다. 

우선 정치적 자유이다. 정치적 자유는 하나의 신념을 강요하며 반대하는 이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전체주의의 반대편에 위치하며, 다른 신념을 가진 이들을 포용한다.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곳에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전제하는 법은 통치자의 자의적 판단을 제한한다.

다음은 경제적 자유이다. 경제적 자유는 사유재산제를 의미하며, 법은 국가 혹은 누군가의 임의적 몰수 시도로부터 나의 소유권을 지켜준다. 법치가 보장하는 소유권은 개인이 재능과 열정을 다해 창조적 파괴를 이루게 하는 동력으로, 개인은 보상과 소유권, 즉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환경에서 나와 내 가족의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것은 인류의 진정한 발전이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대의가 아니라, 수없이 다양한 동기와 재능을 지닌 개인의 노력을 통해서 가능한 이유이다. 

이러한 사회는 반드시, 조금 더 각별한 재능을 지닌 인재를 사랑하고 선대한다. 기술과 혁신을 선도하는 인재가 창출할 수 있는 가치와 부의 폭발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역사로 돌아간다. 유대인이 떠난 스페인의 도시 상공업은 피폐해졌고, 스페인은 식민지로부터 유입된 다량의 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산업혁명과 부국 대열 합류에 실패했다. 위그노가 떠난 프랑스는 여전히 넓고 비옥한 농토를 근간으로 하는 유럽의 강국이었으나,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과 독일의 성장 그리고 이후 힘의 정치의 전개방식은 프랑스의 상처이다. 

조선의 자기산업은 품질과 생산량 면에서 급격히 사멸의 길을 걸었다. 뛰어난 도공의 부재도 이유였겠으나, 사농공상이란 착취적 이데올로기는 인재가 이끄는 발전 가능성을 억압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우리보다 3배 잘 살았던 북한보다 50배 부자이다. 자유민주주의 헌정이 보장한 개인의 정치·경제적 자유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 개인의 잠재력을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는 함께 나란히 나아가는 기차의 양 레일과 같다. 이것은 권력을 독점하려는 세력이 부와 실력을 가진 인재를 경계하는 이유이다. 유대인과 신교에 대한 카톨릭의 박해는 신념의 문제이기에 앞서 사회경제적 기득권 유지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폭력적 몰수를 통해 경제 엘리트를 제거하는 사회주의 혁명 역시 유토피아 건설이라는 신념을 앞세운 경제 장악이다. 사유재산을 억압하는 징벌적 과세와 공유제 논의 그리고 인재와 경제 엘리트에 대한 미움이 조장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