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우세스크는 교양과 지성이 전무한 한 사람이 사회주의 사상에 빠지고, 자국의 아픔을 자극하는 민족주의를 활용하여, 정적 제거와 역사 왜곡을 통해 일인 독재 체제로 전환하는 양상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스탈린과 마오쩌둥, 김일성은 협력과 견제의 교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남자들이다.
범(凡) 사회주의권의 대장이었던 스탈린 사후(死後) 이들은 소련과 일정한 거리를 두며, 자신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각자의 급진적 정책은 자국의 시스템이 소련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었고, 결국 나름의 방식으로 예외 없이 망해갔다.
주목하고 싶은 분야는 주택이다. 꼭 필요하나 비싸고 따라서 빈부의 차이를 극명하게 나타내는 집은, 평등한 유토피아를 만들어야 하는 사회주의 리더들이 우선 탐내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 차우세스크의 루마니아: 모두가 '내 집 마련'에 성공(?)하자 주택 거래 시장 붕괴
차우세스크 루마니아의 정책 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기 소유의 집에 거주하는 것이었다. 국유화된 주택을 국민에게 싼 가격에 판매했고, 주택 보유율은 96%가 됐다. 모두가 '내 집 마련'에 성공하자, 주택 거래 시장이 붕괴했다. 건축업자들은 집을 짓지 않았고 이후 토목과 건설이라는 경제 동력이 증발했다. 전 국민의 자가 거주와 주택 시장의 부재로 여분의 집이 사라졌고, 사람들은 타지에 나가서 집을 구할 수도, 결혼 후 세대 분리를 할 수도 없게 됐다. 결국 루마니아 사람들은 그 시절 지어진 작고 낡은 주택에 대대로 온 가족이 살게 됐다.
나만의 집, 우리 가정만의 집에 살 가능성이 없다는 것은 커다란 박탈이다. 나아가서 투자 전망에 맞춰 괜찮은 집을 알아보고 감각을 발휘해 인테리어를 하며 향후 시세 차익을 통해 자산 증식을 모색할 여지가 없다는 것은, 높은 주택 보급률 이면의 깊은 좌절이다.
◇ 마오쩌둥의 중국: 인간의 생로병사 모두 책임질 듯했던 극좌(極左) 실험의 결과는 4000만의 죽음
높은 주택 보급률로 인해 온 가족이 부모님 댁에 살아야 했던 루마니아인의 삶은, 극좌 실험 속 중국인에 비해서는 호사(豪奢)이다. 중소(中蘇)분쟁 이후 마오쩌둥은 중국식 사회주의의 우수성을 입증하고자 대약진 운동을 시작했고, 중국의 농촌 가정은 인민공사에 흡수됐다. 가정의 경계와 사유재산이 철폐된 평등한 유토피아에서, 번호로 호칭되었던 남자와 여자는 각자의 기숙사에 묵었고 거대한 식당에서 함께 밥을 먹었다.
주택 문제 해결 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생로병사를 모두 책임질 듯했던 사회주의 실험의 결과는 참담했다. 근로의욕 감소와 효율성 저하로 생산력이 급감했고, 숫자와 상황을 왜곡하는 정치로 인해 4000만이 아사 혹은 박해로 사망했다. 중국 정부는 대기근을 원인으로 지목하나 당시 자연재해는 예년 수준이었고, 이것은 문화대혁명의 책임을 4인방에게 돌리는 것과 비슷한 논리 즉 공산당은 책임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오쩌둥 사후 덩샤오핑이 시작했던 개혁개방의 핵심은, 집단주의 극좌실험의 종료이자 시장과 사유재산의 역할 인정이었다. 그리고 곧, 인민의 삶은 상당히 회복됐다. 북한과는 달리 말이다.
◇ 김일성의 북한: 아파트 붕괴 두려워하는 평양 엘리트들
스탈린 사후의 소련과 극좌 실험 중이었던 중국, 양국 모두를 위협으로 느꼈던 북한은 자력갱생 노선을 택했다. 자폐적 고립주의를 추구하며 신정 체제를 이룩한 북한의 주택 정책은, 세대 분리를 고려했다는 점에서는 루마니아보다 배려가 있다. 소유권이 아닌 평생이용권이라는 점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정치·경제적 자유가 부재한 곳에서의 정책에 관해, 취지와 실천의 의미는 미미하다. 1990년대 100만 명 이상의 아사, 현시점 26%의 전기보급률은 단적인 예다. 당 간부의 한 달 임금이 몇 달러인 곳에서 평양 거주권이 수천 달러에 거래되며 그 평양 엘리트들이 아파트 붕괴를 두려워한다는 점에서 더욱더 그러하다.
◇ 카다피의 리비아: 소유권이 불분명한 집... 거주에 관한 노심초사 일상화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를 꿈꿨던 나라의 주택 정책을 보며, '자원이 풍부하고 돈이 넉넉했으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이 든다. 리비아처럼 말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국유화된 주택을 국가가 배분하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졌다. 모스크바와 평양 엘리트 양산 혹은 중국의 도농(都農) 분리와 같은 또 다른 차별 혹은 권력 투사일 수 있기 때문이었을까. 한 차원 높은 평등을 위해 카다피는 빈집을 점유한 사람이 소유권을 갖는 정책을 추진했다. 나아가서 선점 능력에 의해 불평등이 고착화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세대원이 모두 외출 시 해당 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제공했다. 제도 완비를 위해 자물쇠 사용 금지 조치까지 취했다.
소꿉 장난 규칙 같은 주택 정책의 결과는 당연히 이상했다. 집이 비는 순간 집을 뺏길 수 있는 나라의 승자는, 집을 지킬 누군가를 상시 확보한 가정이었다. 역시 경제의 논리이다. 더군다나 거주에 관한 노심초사가 일상이었고, 소유권이 불분명한 집은 애지중지의 대상이 아니었다.
◇ 오늘의 대한민국: 시장(市場)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만든 부동산 문제
대한민국의 주택 시장은 괜찮았다.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쉽게 사고팔 대상은 아니었고 지역적 유인에 따라 시세 차이는 있었으나, 거주와 투자의 대상인 주택 시장은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작동했다. 시장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일하기 전에는 말이다. 이들은 보이지 않는 손이 만들어 놓은 자연스러운 주택 시장에 보이는 손을 갖다 대며, 많은 사람의 재정과 마음을 손상시켰다. 정치적인 이유로 시장을 부정했던 북한에서, 얼마간의 식량을 얻기 위해 집을 파는 절량(絕糧) 세대가 속출하는 결과를 보면서도 말이다.
정부는 공급을 주도하며 주택 시장을 조정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공급자가 되면 많은 이들은 정부 혹은 정부 측 관료들에게 종속된다. 반대로 시장이 주택 시장을 움직일 때, 공급은 수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대안을 찾을 기회가 많아진다. 당연히 그렇다.
개인 차원에서의 집은 바깥세상으로부터 나와 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는 재산의 상당 부분이며, 국가 차원에서 역시 시장경제의 주요 축이다. 무엇보다도, 집은 생명이 탄생해서 자라고 가족이 함께 추억을 쌓아가며 도덕과 영성이 전달되는 공간이다. 경제와 역사에 무지한 이들이 주도하기에는 너무나도 중요한 영역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