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부터 실시된 ‘4단계 거리 두기’ 방역 조치로 저녁이면 붐비던 시내 거리가 한산해졌다. 오후 6시 이후에는 2명까지만 사적 모임이 허용되니, 사실상의 통금(通禁)이요 금족령(禁足令)이나 다름없다. 먹자골목은 초토화됐다. 최저임금 인상까지 겹쳐 자영업자는 죽을 맛이다. 지하철을 타면 보안요원들이 순찰하면서 ‘마스크 똑바로 쓰라’고 경고한다. 해외여행 기대감도 순식간에 요원해졌다. 간신히 백신 맞은 사람들도 ‘인센티브’가 사라졌다. 퇴근길에 시청역 역사(驛舍) 내 ‘백신 맞으면 이런저런 인센티브가 있다’고 광고하는 전광판을 볼 때면 민망할 따름이다. 백신은 고사하고 우리는 아직도 이 찜통더위에 ‘마스크 제대로 안 쓴다’고 당국의 훈계나 듣고 있는 실정이다. 벌써 2년째다.
간혹 부작용이 있다지만, 그래도 이 엄중한 시국에 백신 안 맞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맞기 싫어서 안 맞는 게 아니라, 맞고 싶은데 못 맞는 거다. 정확히는 아주 느리게 접종하고 있는 거다. 들여온 백신이 찔끔찔끔하니 아껴 쓰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고선 마치 풍족하게 순차적으로 접종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곧 ‘극복한다, 집단면역이다, 위기를 넘겼다’ 같은 말잔치와 혈세(血稅) 재난지원금으로 생색내기 바쁘다. 과연 정신승리와 자기 합리화가 전매특허인 정권답다.
그나마도 2030 젊은 세대는 비교적 건강하다는 이유로 후순위로 밀렸다. 당연한 소리처럼 들리는가. 남녀노소를 차별 접종하는 이유가 뭔가. 정부에서 확보한 물량이 부족하니까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내놓은 게다. 작년 가을 정부가 ‘우리는 방역 선진국’이라며 국민 희생을 담보로 한 ‘거리 두기’에 도취하기 전에, 백신부터 제때 충분하게 확보했다면 이런 사달이 났겠나. 지난 2월, 당시 저개발 국가까지 일정량을 확보한 백신을 ‘드디어 우리도 들여온다’며 무슨 특공대에 수송 훈련에 갖은 ‘홍보용 쇼’는 다하던데, 그렇게 자랑하던 백신은 지금 어디에 얼마나 있나.
백신이 없으니 확진자 폭증 때마다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게 서민경제 골목상권 무너뜨리는 통제 조치 말고 더 있겠나. 코로나 재확산이 거리 두기 안 지킨 국민 탓인가, 방역은 국민에게 떠밀고 백신 확보는 방기한 무책임한 정권 탓인가. 이 나라처럼 온 국민이 정권의 일방통행적인 방역 조치에 순응하고 협조해준 국가가 전 세계에 또 어디 있나. 대통령은 퇴임 비서들과 지밀(至密)한 청와대에서 5인 이상 술자리를 해도 공무(公務)라서 문제없고, 청년들은 포장마차에 모여 소주잔 기울이다 10시면 쫓겨나서 한강공원에 나앉으면 ‘코로나 확산 주범(主犯)’이 되는가. 하기야 ‘정권 반대 집회’는 ‘코로나 살인자’라고 극언(極言)이나 퍼붓고, 자기 편 ‘노조 집회’에는 설설 기는 정권이 무슨 발상인들 못 하겠나.
젊은이들이 다수 확진됐다면, 그건 무슨 여름철에 삼삼오오 길거리를 돌아다녔기 때문이 아니다.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백신을 많이 못 맞은 상태에서, 실내 밀집 시설에서 바이러스가 확산됐을 때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거다. 백신 접종도 밀리고, 전염 피해도 심하게 받는 청년들에게 코로나 확산의 대죄(大罪)를 덮어씌우는 건 몰염치하다. 안 그래도 청년들은 이 정권의 신물 나는 ‘내로남불’에 지칠 대로 지쳤다. 자산 축적의 기회, 능력껏 경쟁할 수 있는 기회, 성과에 따라 평가받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까지 죄다 박탈당한 청년들이 이젠 ‘정치 방역의 희생양 노릇’까지 해야 하나. 오늘도 스마트폰과 컴퓨터 두드리며 잔여 백신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의 처지가 한스러울 따름이다.
방역 무능 정권 덕택에 대한민국은 코로나 2년 만에 ‘금지의 나라’가 됐다. 이동부터 집합까지 기본권이 금지되는 건 당연하고, ‘낮술 금지’ ‘목욕탕 대화 금지’ ‘이발소 앞면도 금지’에 이젠 아예 ‘헬스장 빠른 노래 금지’까지 나왔다. 이쯤 되면 ‘정치 방역’이 아니라 ‘황당 방역’ ‘코미디 방역’이라 할 만하다. 아무리 국제 외교와는 담쌓고 사는 쇄국정권(鎖國正權)이라지만, ‘K방역 멋지다’고 손뼉 치다 뒤돌아서서 조소(嘲笑)할 ‘백신 선진국’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왜 부끄러움은 항상 국민의 몫이 되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