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포틀랜드주립대 수전 콘라드 교수와 노던애리조나대 더글러스 바이버 교수의 '진짜 영문법'이라는 책이 있다. 영어 원어민이 쓰고 말한 실제 용례를 제시하며 학교에서 배운 문법이 실제와 다를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학교에서 단순 과거 시제는 1) 행위, 2) 상태, 3) 과거에 일어났고 끝난 상황일 때 사용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렇게만 사용해야지, 그 이외에 사용하면 큰일 나는 줄 안다. 틀린 것이기 때문이다. 틀린 건 나쁘고, 안 틀릴 때까지 무한 반복해서 고쳐야 한다. 

1) 과거 행위: We ate bulgogi yesterday. 우리는 어제 불고기를 먹었다.

2) 과거 상태: She was a teacher. 그녀는 교사였다.

3) 과거에 일어났고 끝난 상황: Did you have a good weekend? 좋은 주말 보냈는지요? No, we didn’t. 아니오, 그렇지 않았어요.

여기까지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다. 

하지만, TV나 영화를 보다 보면 영어 원어민들이 단순 현재 시제 상황에서 want나 need를 단순 과거 시제로 사용하며 어떤 제안이나 선호도를 묻는 대화가 나온다.

Did you want more coffee? (혹시) 커피 더 달라고 하셨는지요? 

단순 과거 시제(Did + want)를 사용하였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번역은 (혹시) 커피 더 달라고 하셨는지요? 라고 보이지만, 실제는 웨이터가 손님에게 커피를 더 드릴까요? 라는 말을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다. 

Did you need your receipt? (혹시) 영수증 필요하시다고 하셨는지요?

역시 단순 과거 시제(Did + need)를 사용하였다. 표면적으로 보이는 번역은 (혹시) 영수증 달라고 하셨는지요? 라고 보이지만, 실제는 점원이 손님에게 영수증 드릴까요? 라는 말을 공손하고 조심스럽게 묻는 것이다.

Politeness는 polite 공손한, 예의 바른이라는 형용사의 명사형이다. 우리말로는 공손, 예의 바름이다. 영어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you라고 부르는 버르장머리 없는 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영어에도 공손체가 있다. 

영어도 사람이 쓰는 말이고, 영국에서 수 백년 동안 영어가 사용되며 왕이나 귀족의 권력이 서슬 퍼렇던 시대에 평민이나 시종이 왕이나 귀족에게 공손하게 말하지 않으면 어디 살아 남아겠는가? 

어디선가 영어를 사용할 때 공손하게 들리도록 하려면 과거형을 쓰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가장 흔한 예가 Would you like...이다. 

Would you like more coffee? (혹시) 커피 더 하시겠는지요?

자, 여기까지 읽었다면, 왜 우리가 영어를 못 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A: Did you have a good weekend? 좋은 주말 보냈는지요?

B: No, we didn’t. 아니요, 그렇지 않았어요.

단순 과거 시제로 물었으니, 단순 과거 시제로 답하는 위 대화는 매우 정상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아래는 어떨까?

A: Did you need or cream for your coffee? (혹시) 커피에 넣을 우유나 크림이 필요하다고 하셨는지요?

B: No, I’m fine. 아니요, 괜찮아요.

위 대화를 보면, 단순 과거 시제로 물었는데 건방지게 단순 현재 시제로 답하였다.

A: Did you want to try one of these drinks? (혹시) 이 음료 중에서 하나를 마셔보고 싶다고 하셨는지요?

B: Yeah, I’ll have one. 네, 하나 마셔볼게요.

위 대화에서는, 단순 과거 시제로 물었는데 심지어 단순미래 시제로 답하였다. 

A: Did you want chocolate on top of those? (혹시) 그 위에 초콜릿을 얹고 싶다고 하셨는지요?

B: No thanks. 괜찮아요.

위 대화에서는, 단순 과거 시제로 물었는데 상대방은 그냥 이상한 대답을 했다. 

영어 원어민이 "How are you?"라고 물으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대답해야 한다. 영어 원어민이 "What’s up"이라고 물으면, 학교에서 안 배웠으니 뭐라고 대답할지 모른다. 내가 영어 원어민에게 "How are you?"라고 물었는데, 상대방이 "Not so bad"라고 답하면, 학교에서 배운 "I’m fine thank you and you?"라고 답하지 않아 당황스러워진다.

우리가 학교에서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영어 원어민을 만나면 영어를 제대로 못 하는 이유다. 영어 원어민들은 영어 교과서에 나온 대로 영어를 사용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학교 현장에서 사용하는 영어 교과서 다수는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제시한 편찬 상의 유의점에 따라 개발된 후,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주관하는 검정 심사 적합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이때 영어 교과서에 실리는 내용은 교육적이어야 하고, 언어는 사교육을 유발하지 않도록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정한 기본 어휘 3000개 이내에서 사용해야 한다. 즉, 영어 교과서를 만들 때 이 기본 어휘 3000개를 주로 사용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지침이 있는 것이다. 수능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학교에서 10년 동안 영어를 배웠다. 그런데 그간 우리는 영어 원어민이 실제 사용하는 영어를 배운 것인지, 아니면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정한 매뉴얼 같은 것을 배운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동안 '맞다', '틀리다'로 답하는 100% 객관식 찍기 시험을 통해 영어를 잘 배웠는지를 평가받는다. 

언어는 생물이다. 더는 우리 아이들에게 영어를 배우며 '맞다' vs. '틀리다'는 이분법적 사고방식을 주입해서는 안 된다. 단언컨대, 수능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하고, 우리나라 글로벌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수능.. 이젠 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다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