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대통령궁에 깃발을 걸며, 마침내 점령을 완료했다. 미국은 추가 병력을 파견해 자국 공관 직원과 아프간인의 국외 도피를 돕고 있다. 탈레반은 국민의 안정을 보장하는 개방적 정부를 만들겠다고 선언했고,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번 사안은 베트남 패망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두 발언 모두 신뢰하기 어렵다.
이슬람 공화국 건설을 목표로 전쟁과 테러를 자행하던 탈레반이다. 가혹한 이슬람 형법을 실행하며 시민을 억압하고, 유적을 파괴하던 그 탈레반이다.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은 폭압적 신정 전체주의 국가가 될 것이며, 국가를 거점 삼은 탈레반의 영향력은 중동에서 더욱 확대될 것이다.
◇ 미국과 중동
911 테러 이후 중동에 개입한 아들 부시의 전략은 애초에 문제가 많았다. 네오콘(NeoCon)이라고 불리는 당시 정책결정자들은 불량 국가의 민주화를 통해 해당 국가와 미국의 행복을 보장하기를 원했던 개입주의적 이상주의자로, 이를 위해 전쟁을 불사했다. 마침 이들에게는 소련의 부재로 인해 넘쳐났던 미국의 힘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했고, 911 테러는 대규모 중동 전쟁의 계기가 됐다. 전쟁의 실질적 명분은 '대량살상무기 제거'였으나, 이들의 빅픽처는 중동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듦으로써 미국의 안보를 담보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모두 실패다. '있어야만 했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후 미국은 기나긴 세월 중동에서 엄청난 국력과 인명을 희생했다.
정교한 힘의 계산을 통해 신중하게 국가 이익을 추구해야함을 주장하는 현실주의 국제 정치 학자들은 일찍이 이 전쟁을 반대했다. 국가 이익의 측면에서 미국은 실체가 불확실한 중동 테러리스트를 대상으로 광범위한 전쟁을 치를 필요가 없으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도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수많은 미군 사상자를 내며 길고 긴 시간 미국의 국력을 소진한 중동 전쟁을 확인했던 현실주의의 거장 미어샤이머 교수는, 민주주의를 확장하겠다는 자유주의적 외교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요지의,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을 발간했다. 그는 자유주의는 각 국의 민족주의를 이길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유는 대부분의 국민들은 다른 나라가 와서 이식하는 낯선 민주주의보다 전통의 연장선 상에 있는 자국의 제도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착취적이더라도 말이다. 이것이 대학자가 지적한 냉정한 현실이니 중동은 말 할 것도 없다.
이슬람이라는 막강한 세계관 때문이다. 이슬람은 외부적으로는 기독교 문명에 적대적이며, 엄청난 갈등 구도를 내재하고 있다. 이러한 이슬람이 존재하는 중동은, 국경과 민족 그리고 종교 분파의 경계가 맞지 않는다. 유전(油田)의 불균등한 존재는 중동 정치를 더욱 복잡하게 하며, 4개국에 분포된 4300만 쿠르드족과 광범위한 아편 산지 역시 만만치 않은 난제들이다. 성전을 이유로 인간을 탄약 취급하는 악한 테러 집단을 빼놓을 수 없으며, 페르시안이라는 별도의 정체성으로 이들을 지지하는 맹주 이란을 기억해야 한다.

◇ 트럼프 행정부의 성과
미국과 미국 시민의 이익을 추구했던(MAGA: Make America Great Again) 트럼프는 미국의 중동 개입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의 패권 지위에 도전하는 중국을 주적으로 설정했으며, 뾰족한 답이 보이지 않는 중동 사안에 더 이상의 국력을 소모하지 않을 것을 약속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동 정책이 대책 없는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전통적 우방인 이스라엘을 강화하며, 실질적 도전국인 이란을 압박했다. 미대사관 예루살렘 이전과 이란 제재, 그리고 솔레이마니 암살 등은 구체적 양상이었다. 이러한 전략의 결과로써 맺어졌던 아브라함 어코드(Abraham Accord)는 중동의 왕따였던 이스라엘과 주변국의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협약의 또다른 의미는 이란을 전략적으로 봉쇄하는 것으로, 이는 실질적 패권 경쟁국인 중국 그리고 이란으로부터 지원받는 중동 테러집단에 대한 압박이기도 했다.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 이스라엘을 통해 중동을 관리하는 트럼프의 중동 전략은, 그의 임기 기간 중 중동의 안정을 담보하는 한편, 미국의 국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국가 이익 극대화의 일환이었다. 또한 중국과의 패권 전쟁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현실주의적 방안이기도 했다.
트럼프의 중동 정책의 근간은 '셰일 혁명'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적극적 에너지 정책으로, 미국의 셰일 산업이 본격화됐고 미국은 향후 수백년 간 사용할 오일과 가스를 확보했다. 또한 세계 최대의 오일 수출국이자 최대의 천연가스 수출국으로 부상했다. 이와 같은 에너지 독립은 미국이 더 이상 중동 석유 메이저의 눈치를 볼 이유도, 에너지 확보를 위해 전쟁에 끌려들어갈 필요도 없음을 의미했고, 트럼프 행정부의 유연한 중동정책을 가능하게 했다.
◇ 바이든 행정부의 중동 전략
바이든 취임 이후 중동의 정세 변화는, 행정부의 실질적 중동 전략 전개와 이에 대한 분석 및 평가를 선행했다. 2021년 5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공격과 아이언돔의 활약은 시작이었으며, 이후 탈레반의 세력 확장과 이번 카불 점령은 트럼프 시기 이뤄졌던 중동 안정의 공식적 종결이다. 미국의 이란 정책은, 순식간에 진행된 중동 평화 균열의 직간접적 원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란을 강경하게 제재했던 트럼프의 이란 정책을 폐기하고, 오바마의 이란 합의로 복귀했다. 이란의 숨통을 풀어주는 바이든의 이란 정책은 이란의 최대 에너지 교역국인 중국에게 반가운 일이며, 이란의 지원을 받는 중동 내 크고 작은 무장세력의 세력 확장을 의미했다.
◇ 전망
탈레반의 카불 점령에 맞춰 중국은 아프가니스탄 복구와 재건 과정에 중국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고 선언했다. 일대일로 프로젝트의 일환이기도 하다. 향후 지속적 관찰이 필요하겠으나, 바이든 행정부의 이란 정책은 중동의 혼돈과 중국의 확장을 담보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국제 정치는 괜찮은 방향으로 순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서로 다른 정체성과 목적을 가진 국가 간의 치열한 생존 게임이기 때문이다. 이에 선한 방향의 국제 정치를 위해서는, 검증된 이론을 통한 냉정한 분석이 선행돼야 하며, 뚜렷한 전략 목적과 힘의 계산 그리고 일관되고 용기 있는 실천이 필요하다. 이념 편향성과 국내 정치적 욕심, 그리고 이전 행정부에 대한 경쟁심은 파괴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이 한 국가의 존망과 국민의 생사와 직결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책 결정자의 도덕성과 실력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