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의 경영사상가인 헤르만 지몬(74) 박사가 코로나 이후의 세계경제에 대해 “수출의 시대가 저물어 간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글로벌 명저(名著) ‘히든 챔피언’을 쓴 인물.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중소기업과 이들의 성공 비결이 책에 담았다. 지몬 박사는 독일 본 대학에서 경제·경영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미국 하버드·스탠퍼드·MIT, 영국 런던비즈니스스쿨 등에서 강의해 왔다. 2019년엔 세계 최고 경영사상가 50명을 추린 ‘씽커스 50’에 뽑히면서 ‘유럽의 피터 드러커’로 불렸다.
컨설팅 기업 CEO이기도 한 그는 최근 조선일보 경제섹션 ‘Mint’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물건을 만들어 보내는 대신, 돈과 데이터를 보내 현지에서 물건을 만들어 공급하는 것이 대세가 된다”며 “인건비가 싼 곳, 원자재가 싼 곳을 찾아 전 세계가 분업하는 세상이 끝나가고 있다”고 했다.
Mint에 따르면, 지몬 박사는 “수출이 GDP(국내총생산)의 2배에 달했던 초(超)세계화(hyper-globalization) 시대가 끝나고, 이젠 탈(脫)세계화(de-globalization) 시대에 접어들었다”며 “FDI(외국인 직접 투자)를 통한 (소비국) 현지 생산이 늘면서 수출은 줄어들고, 이에 따른 세계 경제의 구조 조정이 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수출 기반 경제 구조를 갖고 있는 우리로서는 뼈를 깎는 듯한 얘기다.
그는 “기업들은 (팬데믹으로 인해) 글로벌 공급망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 알게 됐다”며 “그 대안은 원자재나 부품을 직접 수급할 수 있는 해외에 생산 기지를 세우고, 독립된 현지 법인을 통해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본사가 있는 국내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수요처나 원자재가 있는 해외에 투자한다는 것”이라며 “이렇게 하면 반도체 공급난 같은 사태를 피할 수 있다. (미·중 갈등처럼) 첨예해지는 국제정치의 영향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도 했다.
지몬 박사는 “요즘 출장이나 대면 회의 없이도 기업이 잘 굴러가는 걸 보고 꽤 많은 CEO(최고경영자)가 ‘기적 같다’는 말을 한다”고 했다. 이런 경험은 단순히 놀라움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지사나 인력에 더 많은 자율권을 줘도 되겠다’는 기업 오너와 전문 경영인들 사이의 ‘공감대’로 이어지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지몬 박사는 “더는 본사가 어디인지 중요치 않다”며 “이제 세계적인 기업의 CEO에게 중요한 건 ‘우리가 잘하는 산업’에 최적화된 지역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예컨대 인공지능 산업이라면 중국, 전자 제품이라면 한국이나 대만, 소프트웨어라면 미국 실리콘밸리가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몬 박사는 한국에 더 많은 히든 챔피언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선 정부의 산업 정책과 함께 지방분권화와 교육 개혁이 같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 중심으로 발전한 경제와 명문대 중심 교육으로 인해 전국에 산재한 유망 중소기업에 제대로 된 인재 공급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했다. OCED에 따르면, 독일의 대학 진학률은 2019년 기준 33.3%로 한국의 절반 이하다. 하지만 전 세계 3400여개에 달하는 글로벌 강소 기업 중 독일의 점유율은 46%로 한국(0.64%)의 72배에 달한다.
지몬 박사는 코로나 이후에도 기존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하나의 기술이나 사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목표 시장을 좁히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아무리 작은 시장이라도 하나에 집중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압도적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지몬 박사는 또 ‘인재’를 강조했다. 그는 “기업가는 화가(畵家)와 달라서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며 “훌륭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고, 회사와 함께 성장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