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조선일보DB

지갑과 호주머니에 소중히 넣고 다녔던 현금이 이젠 필요 없는 시대가 된 모양이다.

지난 22일 서울시는 시내버스에 ‘현금 결제’ 장치를 없앤 후 버스 운행을 해보겠다고 밝혔다. 물론 한시적으로, 시범적으로 시행하는 것. 오는 10월부터 내년 3월까지 6개월 동안 교통카드로만 요금을 받겠다는 것이다. 코로나 전파 감염 차단, 요금함 관리 비용 절감 등이 시행 이유다. 카페·편의점 같은 상점에서도 ‘현금 없는 매장’이 등장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작년 기준 전체 매장 1460곳 중 약 60%에 달하는 870곳을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손님들에게 현금 대신 카드·모바일 등 다른 결제 수단을 먼저 사용하도록 권유하는 식이다.

대부분 현금 결제가 어려운 무인(無人) 편의점도 올해 상반기 기준 약 994곳에 달한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 ‘노브랜드’는 현재 전체 점포의 20%가량을 현금 없는 매장으로 운영한다. 생활용품 유통 기업인 CJ올리브영의 경우 현금 없는 매장을 2018년 사내(社內) 벤처 최우수 아이디어로 선정, 현재 20여 곳을 운영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현금 사용량도 줄고 있다. ▲비대면 결제의 보편화 ▲간편 송금 서비스 이용 등이 감소 요인이다. 한국은행 조사에 따르면, 2018년 가계의 평균 거래용 현금(조사 당시 응답자가 지갑·주머니에 갖고 있는 현금) 보유액은 2015년 대비 33%가 줄어든 약 7만8000원이었다고 한다. 현금이 지급 수단에서 차지하는 비율 또한 2017년 36.1%에서 2019년 26.4%로 줄었다. 사람들이 현금을 잘 안 쓰니까 최근 들어서는 ATM(현금자동인출기)과 위조지폐, 심지어 소매치기 숫자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2018년 국가별 현금 결제 비율을 보면, 선진국인 영국(28%)과 미국(26%)도 우리나라(19.8%)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중국의 경우 정부가 앞장서서 국민들에게 비(非)현금 결제를 권장하고, 스웨덴에서는 스마트폰 앱 결제로 교회 헌금을 내기도 한다. 특히 스웨덴은 걸인(乞人)들까지 단말기를 들고 ‘앱 결제 동냥’을 할 정도란다.

문명의 발전에 따라 현금 없는 세상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화폐 제조 비용 절감 ▲분실·도난·위조 위험 감소 ▲투명한 자산 관리를 통한 세원(稅源) 확보 등 긍정적 효과도 있다. 해결해야 할 문제도 없지 않다. ▲디지털 결제에 따른 신종 범죄 발생 가능성 ▲비현금 결제에 익숙하지 않은 노약자들의 소외 등이 대표적이다. 노트북이 발명됐다고 종이 노트가 사라지지 않듯, 실물 ‘현금’ 또한 소수의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존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