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탈(脫)원전 기조를 토대로 이른바 ‘탄소 중립’을 추구하겠다던 문재인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역풍(逆風)을 맞고 있다. 지난 봄철, 여름을 앞두고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하는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줄고 되레 석탄 발전량이 급격하게 증가한 것이다. ‘탄소 중립’의 첩경(捷徑)인 원자력 발전 대신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고수하다, 전력 효율이 떨어지자 탄소 발생의 원인으로 꼽히는 석탄 발전에 도로 의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한국전력공사 통계를 인용한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이달 종합한 최신 집계치인 지난 6월 국내 석탄 발전량은 1만6679GWh였다. 이는 지난 4월(1만2862GWh) 이후 3개월 동안 30% 넘게 증가한 수치다. 반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은 같은 기간 최대 4195GWh에서 지난 6월 3709GWh로 12% 가까이 감소했다. 이 신문은 “이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이 일정하지 않아서 필요한 때에 적절히 공급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으로 풀이된다”고 보도했다.
신재생은 전력 적절 공급 어려워... 여름철 전력 수요 몰리자 ‘석탄 발전’에 의존
전력 업계 관계자는 이 신문에 “원전 시설 정비가 길어지고 올여름 무더위가 심할 것이라는 전망에 전력 예비율을 높이기 위해 화력 발전량 비중을 늘렸다”고 전했다. 신문은 “이처럼 폭증한 석탄 발전량은 다음 달 발표 때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지난 7월 정부는 국내 석탄 화력발전소 전체 설비 용량의 90% 이상을 가동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전체 설비 용량 35.3GW 가운데 최소 30GW 이상을 매일 가동한 것이다. 지난해에는 석탄 발전 가동률이 최대 83%였지만 올해는 전력 수요가 몰리면서 공급의 상당 부분을 석탄 발전에 의존하게 됐다”고 보도했다.

지난 12일 자 《국민일보》 ‘[관가뒷담] 탈원전에 석탄화력발전 풀가동… 딜레마에 빠진 산업부’ 기사에는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전력 수급을 총괄하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졌다. 원활한 전력 공급을 하자니 ‘탄소 중립’ 취지와 배치되는 석탄화력발전까지 총동원해야 한다. 탄소 중립과 안정적 전력 공급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원전을 늘리자는 말은 못 꺼낸다. 가용 자원을 탈탈 털어도 전력 수급이 불안정하면 이번엔 태양광 발전 효용성 논쟁이 벌어진다. 탈원전과 탄소 중립, 에너지 전환 등 여러 실타래를 한꺼번에 풀어내려다가 논란을 자초했다는 뒷말이 나온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 자체에는 큰 이견이 없다. 하지만 대체 자원인 신재생에너지 수급이 궤도에 오르기 전 석탄화력발전 감축과 탈원전을 동시에 추구하려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다. 산업부 관계자는 11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탈원전, 탄소 중립, 신재생 발전 강화... 상충되는 에너지 정책 뒤엉켜 혼란
사정이 이러한데도 현 정부는 사실상 탈원전 기조를 고수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여 ‘탄소 중립’을 실천하겠다고 나선 상태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는 지난 19일 자 《주간조선》 칼럼 ‘탈원전으로는 계산 안 서는 탄소중립 선언’에서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 비율이 증가하면 전력 안정화를 위해서 막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 기후 변화에 크게 좌우되는 태양력과 풍력만으로는 탄소 중립 달성이 어렵기 때문”이라며 “지난해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 비율이 7%였을 때 한전이 발전 대가로 지급한 보조금은 3조 원 정도였다.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비율이 높아지면 결국 전기요금이 오르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 칼럼니스트는 “프랑스는 유럽 주요국 중 상대적으로 낮은 25%의 재생에너지 비중을 보이지만 65%가 넘는 높은 원전 비중으로 독일이나 영국보다 탄소 배출량이 적다”며 “일본은 탄소 중립 전략의 일환으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와 함께 원자력을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탄소 중립을 위한 전략에 원자력을 포함한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다. 미국 또한 소형모듈원전(SMR)은 물론, 고속로와 핵융합로 등 다양한 차세대 원전을 탄소 중립 전략의 하나로 포함하고 있다”며 “탄소 중립도 우리 여건에 맞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프랑스, 신재생 비중 낮지만 원전 비중 높아 독일·영국보다 탄소 배출량 적어”
김 칼럼니스트는 “원전 없는 탄소 중립도 가능할 수는 있다. 지금으로서는 계산이 서지 않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감당하기만 한다면 말이다”라며 “탄소중립위원회가 발표한 시나리오에는 없지만, 한국원자력학회는 신재생에너지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에너지 비용만 해마다 41조 원에서 96조 원의 추가 부담이 발생한다고 추산한다. 보수적으로 대충 계산한 비용만 2050년까지 750조~1500조 원이다”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래서 원자력을 활용하지 않으면서 2050년 탄소 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최대한 도입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원자력 활용을 통해 에너지 자급률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건국대 경제학과 겸임교수를 지낸 정인호 객원기자는 지난 13일 자 《주간한국》 칼럼 ‘탄소 중립과 탈원전 정책의 공존 가능할까’에서 “원전은 발전 비용이 싸다. 지난해 한전의 발전원별 구입 단가를 보면 원전은 1KW당 59.69원으로 석탄(81.62원), 수력(81.73원), LNG·복합(99.25원), 신재생(149.4원) 등보다 월등히 싸다”며 “원전이 탄소 및 미세먼지 등 환경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힌다. 유럽연합(EU) 정책 자문 기구인 합동연구센터(JRC)가 발표한 ‘원자력 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원전은 100만KW당 28톤 온실가스를 배출해 태양광(85톤)의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정 기자는 “현 정부의 탈원전 계획은 60년에 걸친 장기 계획이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탄소 제로와 원전 축소가 기본적인 방향이라는 전제하에서 기술 개발과 시장 상황을 보면서 조절이 가능한 것”이라며 “지나친 정치적 선동전에 몰두하기보다는 계속적인 토론을 통해 완급을 조절하고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