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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23일 <조선일보>를 읽다가 반가운 이름을 발견했다. 대만의 한국 정치평론가인 유순달(劉順達)씨가 <조선일보>에 세월호 피해자 유족을 위해 성금을 보내왔다는 짧은 기사에서였다. <조선일보> 기사는 다음과 같다.
 
<대만의 한국 정치평론가인 유순달(劉順達)씨가 22일 "피해자 유족에게 전해달라"며 본사에 성금을 보내왔다. 유씨가 보낸 항공 우편 속에는 자필 편지 한 장과 '세월호 희생 유족' 앞으로 된 1000달러짜리 수표 한 장이 들어 있었다. 화교인 유씨는 주한 대만대표부 외교관을 지냈고, 은퇴 후에는 정치평론가로 활동해왔다.
 
유씨는 편지에서 '세월호 불행 사건을 접하고 멀리 대만에서 자꾸 눈물이 난다'며 '유가족분들께 어떻게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저의 부족함만 탓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이젠 정부, 민간 할 것 없이 온 국민이 힘을 함께 모을 때라 믿는다'며 '化悲哀爲力量(화비애위역량·슬픔을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이라고 적었다. 추신란에는 '저의 미성(微誠·작은 정성)을 받아 주시면 고맙겠다'고 적혀 있었다.>
 
유순달 (중국식 발음으로 뤼우쑨따)씨를 알게 된 것은 12년 전이었다. 교보문고 광화점점에 들렸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표지는 다소 촌스러웠고 책 내용도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저자가 눈길을 끌었다. 이름은 유순달, 직함은 주한대북(臺北)대표부 1등 비서관으로 되어 있었다. 대만 외교관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책을 내다니... 흥미로워서 그의 사연을 2002년 <월간조선> 8월호에 소개했다. 서울 광화문에 있는 대만대표부 사무실 청천백일기(靑天白日旗) 앞에 선 그는 “새마을 운동은 한국이 동남아·아프리카·중남미 국가에 수출한 최고의 수출품으로 통하고 있다” 면서 우리 사회 일부의 박정희 전 대통령 비판 풍조에 대해 “국민들이 자기네 지도자들을 높이 평가할 때 국민들도 외국 사람들에게서 함께 존경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유 1등비서관과 몇 번 만났다.
 
유순달 1등 비서관은 중국 산둥(山東)성 태생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화교(華僑)다. 그는 석사 과정만 대만에서 이수했을 뿐 초등학교에서부터 박사 과정까지 한국에서 다닌 사실상의 한국인이었다. 경북대 영어교육학과를 나왔고, 경북대 대학원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통치철학’을 주제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유순달씨가 한국에 근무할 때는 한국에서는 노무현 정권, 대만에서는 천수이벤(陳水扁)의 민주진보당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는 대륙 출신의 아버지를 둔 화교답게 대만독립을 주장하는 천수이벤 정권과, 천 정권에 의해 정치적으로 임명되어 온 당시의 대만대표부 대표에 대해 무척 비판적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국민당 탈당파(脫黨派)가 만든 친민단(親民黨)의 쑹추위(宋楚瑜) 총재를 지지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 번은 그에게 “어디를 고향으로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내심으로는 ‘한국을 고향으로 생각한다’는 대답을 기대하면서...그는 “아버지가 태어난 산둥성을 고향으로, 한국을 제2의 고향으로, 대만을 그 다음으로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충격적이었다. 대만의 현직 외교관이, 자기는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태어난 곳을 첫 번째 고향으로 생각하고, 대만을 3순위로 생각하다니..... 현직 대만 외교관마저 이렇게 생각할 정도면, 대만인들의 국가 정체성(正體性)이 상당히 혼돈상태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정체성이 흔들리는 나라가 국가로써, 하나의 정치공동체로서 언제까지 존속할 수 있을까?
 
2004년 퇴임을 앞둔 유순달씨와 식사를 같이했다. 이별선물로 혁대를 선물하자 그는 “배 기자님, 참 정이 깊은 분이셨네요”라며 고마워했다. 그는 내게 금문도 고량주를 한 병 주었다.
이런 공언처럼 유순달씨는 2004년 퇴임한 후 중국 산둥성으로 돌아갔다. 2007년 11월19일자 <조선일보> ‘사람들’코너에는 유씨가 산둥성 취푸(曲阜)에 있는 원동대학교에 한국어과를 개설하고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기사가 실렸다. 유씨의 형으로 역시 대만외교관으로 일했던 형 유순복(劉順福)씨도 유순달씨와 비슷한 인생 행로를 걸었다.
 
이후에도 <조선일보>에는 유순달씨의 독자기고가 곧잘 실렸다. 직함은 중국 중남임업과기대 한국어학과 교수, 후난섭외경제대 한국어과 교수 등으로 바뀌었지만, 그의 한국 사랑은 여전했다. 그는 서울에 있을 때 한글날의 추억을 되새기기도 하고, 태극기와 애국가 없이 행사를 치르는 통합진보당을 꾸짖기도 했다. 민주당 홍익표 의원의 '귀태(鬼胎)' 발언이 논란이 되던 작년 7월 19일자 <조선일보> 기고에서는 “대개 중국에서 '귀태'란 '마음속에 숨겨둔 악의(惡意)'라는 뜻으로 흔히 '심회귀태(心懷鬼胎)' 혹은 '암장귀태(暗藏鬼胎)'라는 사자성어로 많이 쓴다. 중국 사람들에게는 홍 의원의 발언이 처음부터 마음속에 악의를 품고서 한 말이 분명해 보인다”면서 “그래서 결과적으로 '귀역기량(鬼蜮伎倆·음해적인 처사)'이 천하에 드러났고 스스로 '귀두귀뇌(鬼頭鬼腦·교활하고 음흉함)'가 되어 버렸다. '해인해기(害人害己)'란 성현들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남을 해치는 것은 곧 자신을 해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오래간만에 그의 이름을 접하면서 보니, 그의 직함이 ‘대만의 한국정치평론가’라고 되어 있었다. 그 사이에 대만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대만의 공무원 출신이면서도 대륙(중국)으로 가서 교수생활을 하다가 다시 대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대륙과 대만 사이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이 생활터전을 선택할 수 있는 중국인들이 부럽다. 그들은 이미 상당 부분 통일이 진전된 셈이다.
이제 유순달씨의 나이도 64세.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다. 그의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안부메일이라도 보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