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5일(현지 시각)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궁을 장악한 탈레반 조직원들. 사진=TV조선 캡처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통치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방 경찰청장 공개 처형 영상이 공개됐고, 통역관 가족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고 한다. 판즈시르를 거점 삼아 저항하는 반군에게, 지난 20년 간 더 나은 나라를 만들고자 했던 이들에게, 대학 졸업장을 숨기는 여성들에게, 그리고 약간의 인권을 경험한 아프간인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절이 시작됐다. 

관련한 논평은 몇몇 주체를 대상으로 한다. 우선은 미국이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미국의 정책결정자의 능력과 도덕성이 갖는 국제정치 나아가서 세계사적 함의를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은 아프가니스탄 철수라는 희생적 결정을 감행한 자신의 용단을 치하했으나, 사실은 다르다. 

미국과 미국 시민의 이익을 우선시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미 아프가니스탄 철군에 구체적으로 접근했다. 그의 철군 계획은 셰일혁명을 통한 에너지 독립, 중국을 미국의 경쟁국으로 규정했던 대전략 등에 근거했다. 그의 정책결정자들은 미군 철수 후의 아프가니스탄 나아가서 중동이 겪을 혼란을 고려했으며, 이스라엘과의 공조 강화에 기반한 중동 관리가 선행됐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는, 채찍(폭탄의 어머니(MOAB, Mother of All Bombs) 투하)과 당근(접촉)을 교차 실행하며 탈레반 길들이기를 시도했다. 이것은 단계적 철군을 위한 입체적 노력으로, 전략적-도덕적 측면에서 결함을 지닌 바이든 행정부의 철군 결정과 차이를 갖는다. 

바이든의 정책결정자들이 탈레반의 카불로의 빠른 진군 계획을 몰랐다면 정보라인의 실패이며, 알면서도 관련된 대응책을 조율하지 못했다면 능력의 문제이다. 급박한 철군이 복잡한 상황 속에서의 책임 전가에 의한 것이라면 도덕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어느 경우에도 앞으로 아프가니스탄인이 흘릴 눈물과 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계속 책임져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이번과 같은 방식의 철군이 엄청난 예산을 사용하는 패권국의 정책결정기구가 구사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의문이다. 즉, 실력과 도덕성의 문제이다. 

다음으로 아프가니스탄이다. 미국은 20년의 세월과 엄청난 자금을 통해 괜찮은 나라를 세울 것이라 기대했는지 모르겠으나,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몰락은 모든 노력의 허망함을 보여준다. 괜찮은 나라는 돈으로 세울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는 구경조차 못해본 값비싼 자원이 넘쳐나는 실패국가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가치'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가 지향하는 가치는 무엇이었을까. 극단적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니라는 점 빼고 말이다. 안전하고 부유한 나라를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갈등적인 이슬람 분파와 거대한 아편 생산라인, 민족과 국경의 경계 불일치라는 지정학 그리고 복잡한 민족구성을 가진 가난한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런 나라를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미국의 지원이 있더라도 말이다. 

사실 남들이 부러워할 좋은 나라는 무척 호의적 대내환경에서도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간단하나 쉽지 않은 전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바로 개인의 자유와 존엄이라는 가치이다. 개인이 자유롭고 존엄하다는 보편적 인식, 거기서 출발하는 인권과 법치 그리고 권력을 절제하는 정부, 도덕적이며 책임감 있는 공화주의적 시민만이 진짜 괜찮은 국가 건설을 주도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실패와 미국의 결론적 허송세월의 함의는, 탈레반이 아니었을 뿐 자유인의 공화국을 세우겠다는 인식과 노력이 미약했던 정권의 필연적 실패이다. 자유롭고 존엄한 개인만이, 그 가치를 통해 어려운 내부를 묶어 적대적 환경을 극복하고 괜찮은 현대국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게 아프가니스탄 사안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탈레반만큼이나 폭압적인 북한과의 대치 그리고 외교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와 같이 대한민국에서 철수할 가능성을 희박하다. 에너지 독립을 이룬 미국에게 중동은 더 이상 핵심적 국가이익이 놓인 지역이 아닌데 비해, 대한민국은 패권경쟁국인 중국 견제를 위한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존적이며 방향성 없는 국가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는 우리에게 주요한 시사점을 준다. 우선 대한민국은 지향하는 가치를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하는지를 인식하는 물리적·정신적 무장이 필요한 때이다. 

다음으로 한미동맹이다. 자유인의 공화국으로서 정체성이 분명했을 때, 한미동맹은 국제 공산주의 팽창으로부터 자유진영을 수호한 철혈동맹이었다. 북한의 존재와 미중 패권전쟁은 개인자유 확대를 위한 문명사적 전쟁이 지금도 역내에서 치열함을 보여준다. 이에 대한민국은 미군 주둔의 실용성을 논의하는 단계를 넘어서, 한미동맹의 가치와 대한민국의 문명사적 역할을 숙고하며, 전선의 옳은 쪽에 서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건은 국제정치의 방향성에 함의를 제공한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세상은 점점 좋아지지 않는다. 개인의 자유가 위축되며 취약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주 목도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 비행기에 매달려 카불 탈출을 시도했던 이들을 보며 마음이 무너진다. 그들은 안전한 땅에 안전하게 도착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유를 잃는다는 공포가 이들의 이성을 마비시킨 것이다. 자유는 자유재가 아니다. 저절로 주어지지 않으며, 유지하기도 어렵다. 획득하고 지키는 과정은, 각성과 노력 무엇보다도 희생을 필요로 한다. 자유의 확산을 위한 허브가 될 국가는 그리 많지 않다. 대한민국은 그 중에서도 남다른 책임이 있다. 분단된 한 편이 가장 억압적 체제 하에 있으며, 자유진영 청년들의 참전으로 자유민주주의 헌정을 지켜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소식에 마음 아파하며 동시에 무거운 어깨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한동안 홍콩을 바라보며 비통했다. 그리고는 미얀마 소식에 슬퍼했다. 지금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눈물 흘린다. 그러나 그 괴로움과 망각의 교차가 무슨 의미이겠는가. 결국 자유를 지키려는 자와 뺏으려는 자의 끝나지 않는 전쟁이다. 느리더라도 전자는 이길 것이며 이겨야 한다. 직접 보더라도 보지 못하더라도, 이미 이긴 전쟁임을 확신하고, 자유를 향한 경주에 재능과 노력을 다해 참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