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사태를 보면서 우리 국군의 전시작전권 문제가 다시 중요한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과연 한미 전시작전통제권의 본질은 무엇이며,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어떤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바람한 것일까? 전시작전통제권의 조속한 환수를 주장하는 측의 입장을 중심으로 쟁점을 정리해 본다.
전시작전권 환수는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다?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주권 회복론'의 근거는 '전시'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출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전시작전권과 '평시 작전권'에 대한 오해와 이해 부족에서 생긴 착각인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예를 하나 들어보자. 만약 내일이라도 북한군이 탱크를 동원해서 남침을 시도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이것은 전쟁인가? 아니면 국지적 도발인가? 북한군 탱크의 기동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 그리고 여기서 '전시'라는 개념은 어떻게 규정되는 것일까?
'전시'(War Time) 상황을 규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양국의 합의와 법률적 선포가 선행돼야 한다. '전시' 상황 규정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한국군 사령관과 미군사령관이 적의 기동에 대한 판단을 한 뒤, 한미 양국 국방부장관에게 보고하도록 돼 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결국 최종적으로 '전시' 상황에 대한 규정은 한미 양국 대통령의 '전시' 선포를 통해 실시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전시' 상황에 대한 규정은 '평시' 작전 상황과 엄중하게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북한군의 탱크가 10대일 때와 1000대일 때의 상황이 다를 수밖에 없고, '전시'에 대한 양국의 판단 역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평해전이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사건 등이 '전시' 상황이 아니라 국지적인 북한군의 도발로 판정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연평해전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 우리 군은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던가? 결코 아니다. 즉각적인 방위적 개념을 통해 우리 군 역시 북한군의 도발에 대응하는 군사 작전을 진행했다.
결국 한미상호방위조약 하에서 '전시' 작전과 '평시' 작전은 엄격하게 구분되고 분리돼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시작전권'을 마치 국가의 주권을 잃어버린 것처럼 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실제로 한미상호방위조약 하에서 전시작전권이 어떻게 운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거나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시작전권 환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평화통일연구소'라는 곳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연구소 운영 책임을 맡고 있는 강정구 이사장은 지난 2005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주최로 열린 강연회에서 '6.25는 통일을 위한 전쟁', '한미동맹 철폐,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해서 물의를 빚은 자이다. 그뿐 아니다. '북은 민족 정통성이 있지만 남은 없다'라거나 '만경대 혁명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의 방명록으로 숱한 물의를 빚었다.
그들의 주장은 '전시작전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자주권에 대한 국민적 감정을 교묘하게 불러일으켜 자신들이 목표로 하는 한미동맹 철폐와 주한미군 철수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목적에 다름 아니다.
결국 '전시작전권'과 '평시작전권'의 구분과 분리를 통해서 이미 대한민국은 국방에서 자주권을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전시작전권을 갖고 있지 못하면, 전쟁이 나도 우리 스스로 방어할 수 없다?
1950년 10월 1일, 인천상륙 작전으로 승기를 잡은 유엔군과 국군은 북진을 시작했다. 그런데 강원 강릉 근처, 38선 부근에서 진군을 멈췄다. 당시 대한민국 국군을 지휘하는 정일권 사령관은 이승만 대통령에게 38선 이북은 북한 영토이기 때문에 우리 국군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진군을 멈췄다.
상황을 보고 받은 이승만 대통령은 정일권 사령관에 호통을 치며 독자적인 국군 작전 수행을 지시했다. 그 결과 우리 군의 북진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그날 38선을 돌파한 업적을 기념해서 우리 군은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지정했다.
심지어 전시 상황 속에서도 현실적인 우리 군의 작전지휘가 진행됐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례들 중 하나로 기록돼 있는 일화다. 작전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적과 맞서 싸울 의지가 있는가의 여부에 관한 문제라는 점이다.
이것은 이번 아프간 패망과 아프간 정부군의 무능과 부패, 빈약한 전투의지를 보면서 여실히 드러났다. 실제로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전쟁의 명분과, 전투원의 전의보다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평화를 위해서 전시작전권을 우리가 확보해야 한다?
국방의 기본은 전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현대전에서 가장 중요한 국방의 개념은 '억지'(deterrence)'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남이나 북이나 수많은 인명 피해와 기간 시설들이 파괴되는 것이 뻔한 상황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억지시켜 나가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평화전략이다.
게다가 실제로 전쟁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분석한 자료들에 따르면 미군 2만8000여 명이 빠진 상황에서 남한과 북한만의 단독 전쟁이 일어날 경우 서울이 함락되는 가능성도 존재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핵전력으로 비대칭 전력에서 우리보다 우위에 있는 상태다.
결국 '전시작전권'의 존재는 주한미군의 주둔을 통해 북한으로 하여금 전쟁을 도발할 수 있는 여지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우리의 한반도 평화 전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바로 한미동맹을 통해 실현시키고 있다는 현실적인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국가 안보의 기초는 위협을 줄이고, 자기의 힘을 최대한 강화시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와 생각과 가치를 같이 하는 동맹을 강화시키는 것은 전쟁 억지는 물론이고 우리 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이다.
NATO의 깃발 아래,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해서 동유럽 각국이 뭉치는 것이나 세계 제2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일본이 미일동맹체계 아래 동맹을 강화시키는 것은 그런 현실적인 이익이 있기 때문이다.
'전시작전권' 환수를 주장하는 자들이 강조하는 '국격이나 자존심' 문제로 동맹의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은 곧 국가의 이익과 안보를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발상에 불과하다.
한미동맹과 전시작전권의 긍정적 효과는 무엇인가?
현재 북한군의 복무 기간은 10년이다. 그에 비해 우리 군의 복무 기간은 1년 6개월에 불과하다. 만약 한미동맹이 와해되고 남한 독자적인 방어 체계를 확보하려면 적어도 군 복무 기간이 5년 이상 증가해야 한다고 군사 전문가들을 예측하고 있다.
한미동맹의 일차적 수혜를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며 미래를 책임질 젊은이들이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1953년 한미동맹이 체결되고 '전시작전권'의 합의가 이뤄진 이후, 실질적으로 한미의 전략적 목표는 달성됐고 앞으로 그 경제적 효과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실제적인 위협을 지닌 북한이라는 적대세력에 맞서 독자적인 방위 체계를 운영했을 경우 발생했을 막대한 군사비와 경제적 손실들을 감안한다면 한미동맹 체계야말로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란 사실이 입증된 셈이다. 우리는 그런 힘을 통해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룩했고, 경제력과 군사력에서 북한을 압도할 수 있었다. 남과 북이 대립했던 70년 분쟁의 역사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힘의 근원에 한미동맹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 안보의 꿈과 미래는 복잡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가족과 영토를 안전하게 보존하고 번영으로 인도하는 것을 제외한 어떤 목표도 의미가 없다. 아프간 패망은 오늘날 국가 안보에서 동맹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고 있다. 그런 현실을 망각한 채 감상적인 평화론이나 자주권을 주장하는 세력들의 허울좋은 주장들을 예의주시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말을 기록에 남겼다고 한다.
"국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것 때문에 두고두고 많은 덕을 볼 것입니다."
시간은 많이 흘렀지만, 그 말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그의 말이 옳다는 것은 이미 냉혹한 국제질서가 증명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