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이후 미군정이 시작됨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배우던 일본 교육이 중단됐다. 대한민국만의 교육과 교육 과정이 필요했다. 미군정 교수 요목기에 제시된 영어 능력 목표는 ‘영어를 이해하고, 활용할 기초 실력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이 생전 처음 보는 꼬부랑 글씨와 말을 배우는 데 서두르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 영어과 국가교육과정에서 ‘의사소통’이라는 말이 등장한 건 1992년 제6차 교육과정 때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쉬운 말이나 글로 상황에 적합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한다’로 시작된 언어능력 목표가, 2018년부터 현재까지 시행되는 2015 개정 영어과 교육과정에서도 여전히 적용되고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영어로 기초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중학교에서는 ‘영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목적과 상황에 맞게 영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가 목표다. 교육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그간 내놓은 자료를 보면, 올해 하반기에 발표하겠다는 2022 개정 영어과 교육과정에서도 이런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영어교육이 이미 일상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LG CNS는 2021년부터 서울시교육청 관내 초·중·고등학교 1300개교, 인천시교육청 관내 530개 초·중·고등학교 등에 인공지능 영어학습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튜터를 무상으로 공급하고 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는 목표가 단순히 ‘영어로 기초/기본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라면, 인공지능이 학교 영어 교사에게 수고했다고 등 떠미는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지난 2월에 출간된 ‘인공지능기술 활용 언어교육’ 책을 살펴봤다. 서울대 영어교육과 안현기 교수가 저자로 참여한 책으로, 추가로 궁금한 게 많아 안 교수를 통해 6명의 공동 저자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 왜 영어 교육에 인공지능 기술 적용이 필요한가?
“최근 수십년 동안 영어 교육 분야는 학생들의 영어 의사소통 능력 신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왔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영어 교육’이 한 가지 예가 될 수 있다.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기계번역, 메타버스, 챗봇 등과 같은 인공지능 활용 기술도 점차 영어 교육에서 영역을 넓혀가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나아가, 인공지능 기술은 학생들 개개인의 학습 능력을 고려한 맞춤형 교육에 장점이 있다고 최근의 많은 연구 결과가 밝히고 있다.”
- 왜 영어 교육에 인공지능 기술 적용이 중요한가?
“어떤 기술이 적용될 경우, 그 기술을 사용하면서 얻게 되는 효과와 효율을 고려하게 된다. 인공지능 기술이 영어 교육에 적용될 경우 효과와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예를 들어, 챗봇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의 경우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제공될 수 있고, 또 교실이라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음 없이 영어로 말을 주고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증대시킴으로써 효과와 효율을 동시에 높일 수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 활용 기술은 여타 기술에 비해 효과와 효율이 모두 좋은 바람직한 기술이라고 볼 수 있다.”
-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영어 교육은 어떻게 이뤄지는 게 바람직한가?
“현재는 정해진 원칙이 없음이 사실이므로 기술의 발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다양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다. 기계번역 등과 같이 완성도를 갖춰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을 잘 활용해보는 것이 좋다. 그런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질 낮은 서비스로 인해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최소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완성도는 좀 떨어지지만 현재 서비스가 되고 있는 챗봇과 같은 인공지능 기술을 교육 목적에 맞게 활용해보는 것도 좋다. 메타버스도 이런 경우에 해당된다. 현재는 다양한 서비스를 활용해보면서 언어 관련 인공지능 기술의 현황을 제대로 파악해 볼 필요가 있다.”
- 대학 영어 교육과 교육 과정에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는 능력은 미래의 영어 교사가 갖춰야 할 역량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다만, 사범대학에서 예비 교사가 이 역량을 갖추도록 어떻게 관련된 교육 과정을 만들고 어떻게 교육에 반영해야 할지는 현재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 현재 사용되는 다양한 인공지능기술을 일단 현장의 영어 교육 교육 과정에 반영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서비스되고 있는 인공지능기술을 해당 활동 부분에 먼저 활용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점차 인공지능 기술의 작동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대학의 교육 과정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즉, 자연어처리나 음성처리와 같은 부분을 이해할 필요가 있고, 대학에서 이런 내용을 어떻게 교육 과정에 반영해야 하는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영어 교육의 전망은?
“영어 교육의 한 갈래인 ‘멀티미디어 활용 영어 교육’의 경우 도구로 때로는 재료로 멀티미디어를 활용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인공지능 기술도 처음에는 비슷하게 영어 교육에서 활용될 수 있다. 그러나 인공지능 기술 활용 영어 교육은 멀티미디어 활용 영어 교육과 많은 점에서 차별화된다. 인공지능 기술은 비단 영어 교육에 한정돼 사용되는 기술이 아니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총아이자 핵심 기술이기 때문이다.
즉, 영어 교육은 ‘X+AI’에서 X에 해당하는 다양한 도메인 중에 하나일 뿐이다. 인공지능 기술 활용 영어 교육을 통해, 우리는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나 그들을 교육하는 교육자들이 해당 인공지능 기술을 친근하게 활용할 수 있게 할 뿐 아니라, 인공지능의 중심 기술로서의 자연어처리나 음성처리 같은 기술의 작동 원리를 최소한이나마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정채관 교수와 영국&영어 산책]인공지능으로 영어 완전정복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인공지능이 학교 영어 교사 등 떠민다
정채관은 국립인천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이자, 코퍼스연구소(언어 빅데이터) 글로벌창의영재교육연구실과 영어말하기쓰기센터 책임교수이다. 《우리들의 영국 유학기: 13인의 이야기》《내 아이와 영어산책: 영잘알 부모의 슬기로운 영어 공부법》《4차 산업혁명과 미래 영어교육》 《김정은 시대 북한의 교육정책, 교육과정, 교과서》 《원자력 영어: 핵심 용어 및 실제 용례》등을 저술했다.
Copyright ⓒ 아카이브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신기사
더보기
더보기
TOP News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