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는 트위터(현 X)를 인수할 당시 “코딩 기술자 한 명에 관리자가 10명이 붙어있다”며 ‘중간관리자’를 기업의 효율을 떨어트리는 원인으로 지목했다. 다른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도 회사의 경영 유지를 위해 중간관리자를 정리하겠다며 이들의 역할에 대해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최근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미래 경쟁력에 중요하다는 보고서가 나왔다.
LG경영연구원은 최근 발간한 ‘강한 중간관리자가 조직의 미래를 결정하다’ 보고서를 통해 “중간관리자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조직의 현재와 미래 경쟁력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강승훈 연구원은 젊은 중간관리자들에 대해 “고정관념과 과거 성공체험에 얽매인 고위 경영진에 비해 작은 자극과 조언으로도 크게 바뀌고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원 등 경영진과 실무진을 연결하는 중간관리자는 주로 임원급 조직 산하에서 실무팀을 이끄는 팀장 등 부서장을 뜻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중간관리자는 현장에서 구성원 업무 몰입의 70%를 좌우하고 부서원들의 성과와 생산성은 물론 인재 유지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
강 연구원은 “핵심 역할과 거리가 먼 단순 행정·실무적 업무와 관리자로서의 역량을 체계적으로 쌓을 기회가 부족한 환경이 중간관리자의 역할 수행을 가로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직은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새롭게 정의하고 현장에서 실전적으로 활용할 역량을 갖출 기회를 확대하고 과중한 업무를 동료들과 분담하게 함으로써 역할 수행을 도울 수 있다”며 “중간관리자의 어려움을 성장통으로 여기며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방임적 자세를 벗어나 이들에 대한 투자를 미래 경영자 육성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연구원은 중간관리자의 역할 수행을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과중한 행정‧실무 업무 △역량 확보 기회 부족을 꼽았다. 그는 “중간관리자는 앞서 제시한 변화된 역할에 집중해야 하지만 이들에겐 핵심과 관계없는 일이 너무 많이 주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맥킨지 보고서에 따르면, 중간관리자들은 업무 시간의 약 49%를 핵심 역할과 거리가 먼 법인카드 및 지출관리, 단순 승인 등 행정업무 또는 현장 인력 부족을 메우기 위한 실무 작업에 소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보고서는 이러한 현상을 조직이 가장 중요한 자원인 중간관리자를 낭비하는 것이라 규정했다.
강 연구원은 “그간 많은 조직이 조직 슬림(slim)화와 인력 감축 과정에서 주인을 잃은 행정적 업무의 상당 부분을 중간관리자에게 전가해 왔다”며 “또 실무자가 해야 할 일을 현업에 밝고 당장 인력이 적다는 이유로 중간관리자에게 맡기는 관행도 여전히 존재하는데 이런 요소가 누적되면서 꼭 해야만 하는 역할 수행을 가로막는 수준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로벌 연구 조사 기업 가트너에 따르면, 중간관리자가 팀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역량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고 평가하는 구성원이 절반을 넘는다. 해당 현상은 조직을 이끄는 역량보다 현업 실무 역량이 뛰어난 구성원을 관리자로 승진시키는 관행이 원인이라는 게 강 연구원의 설명이다.
강 연구원은 “좋은 실무자가 반드시 좋은 관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관리자가 양산되는 것”이라며 “기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필요한 역량을 갖추지 못한 중간관리자는 스스로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지거나 핵심적인 업무보다 익숙한 실무 디테일만을 챙기는 무늬만 관리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직이 변화된 환경과 조직 방향성에 기반해 관리자가 해야 할 역할을 다시 정의해 중간관리자가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구분하도록 해야 한다”며 “핵심 역할과 관계가 없는 불필요한 업무들을 시스템과 지원 부서를 통해 덜어주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지난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의 CEO가 된 사티야 나델라는 소모적 내부 경쟁 문화를 극복하기 위해 협업과 새로운 시도를 통한 배움을 추구하는 ‘성장 마인드셋(Growth Mindset)’을 강조했다. 나델라의 요구에 따라 회사 측은 2년간에 걸쳐 수천 명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인터뷰와 워크숍, 설문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도출한 관리자의 새로운 역할을 성장 마인드 셋을 스스로 실천하여 모범이 되는 △모델링(Modeling), 팀의 목표를 정의하고 팀이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코칭(Coaching), 훌륭한 인재를 확보해 유지하며 개인의 능력과 열망을 기반으로 성장에 투자하는 △케어링(Caring) 세 단어로 압축해 제시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관리자들이 이 세 가지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교육 등 지원에 주력했고 역할이 명확해진 리더들은 세 가지 핵심 역할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집중된 노력에 따른 리더십 개선은 구성원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관리자에 대한 구성원의 신뢰가 역대 최고인 90%에 달하는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강 연구원은 “역할 수행에 필요한 역량을 키워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예약 플랫폼 기업 야놀자는 신임 중간관리자 개인의 상황과 환경에 최적화된 리더십 역량 강화를 목표로 지난 2022년부터 ‘LD@Y(Leadership Design@yanolja)’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주간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1주 차 리더의 자기인식 & 동기 촉진의 방정식 △2~3주 차 리더의 커뮤니케이션(질문‧경청‧피드백‧퍼실리테이션) △4주 차 개인별 리더십 디자인으로 구성됐다. 해당 프로그램은 참여자가 각 주차의 교육을 받고 현업으로 돌아가 바로 실천해 그 결과를 분석해 교육 내용의 현장 적용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또 교육 과정의 설계부터 진행까지 모두 조직과 구성원을 잘 이해하고 있는 내부 구성원들이 맡겨 교육 내용의 현실성을 높인다.
강 연구원은 또 일본의 엔지니어링 회사인 JGC 홀딩스의 사례를 통해 중간관리자에게 주어진 업무를 반드시 한 사람이 수행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JGC 홀딩스는 과거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과중한 업무와 책임으로 인해 중간관리자 승진을 기피하는 ‘리더 포비아(Leader Phobia)’ 현상에 직면해 있었다. 이때 회사는 한 명의 중간관리자가 전담했던 업무를 세 명의 베테랑이 분담하는 방안을 떠올렸다.
먼저 공식 조직 책임자인 부서장은 부서의 최종 의사결정자로서 부서의 미래 비전 수립과 달성하기 위한 전략 제시에 집중하게 했다. 그리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전반의 수익 관리와 인력 배치라는 또 다른 중요 업무는 별도로 임명한 부장급 ‘PCM(Project Coordination Manager)’이 담당하게 하고 구성원 코칭과 경력 개발 계획 수립이라는 중요 업무는 역시 부장급의 ‘CDM(Career Development Manager)’을 임명해 책임지고 수행하게 했다. 그 결과 업무 분산 이후 충실도가 높아졌을 뿐만 아니라 구성원의 호응과 만족도 높아지면서 2022년 해당 제도를 주요 부서 전체로 확대 적용하고 있다.
강 연구원은 “그간 많은 조직이 중간관리자의 어려움을 성장통으로 여기며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방임적 자세를 취해온 게 사실”이라며 “중간관리자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조직의 현재는 물론 미래 경쟁력 관점에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조직은 중간관리자의 현재 역할 수행을 돕는 것에 더해 이들을 체계적으로 육성하려는 노력도 함께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글=김성재 아카이브뉴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