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은 작년 6월 일방적으로 남북 연락선을 끊고 남북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했다. 사진=조선일보 유튜브 캡처

지난 27일 13개월 만에 남북 연락선이 복원된 가운데, 작년 여름 연락선을 일방적으로 끊은 뒤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무단 폭파한 북한이 대남 접촉을 재개한 이유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작년 6월 9일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하며 정상 간 핫라인 등 남북 간의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했다. 일주일 뒤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석 달 뒤에는 서해 해상(海上)에서 우리 해수부 공무원을 사살하고 시신을 소각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렇듯 한동안 ‘강경 일변도’로 대남 공세에 나섰던 북한이 문재인 정부의 교류 의지에 화답하며 연락선을 재개, ‘소통의 시그널’을 보내게 된 이유는 뭘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28일 ‘TBS 라디오 – 김어준의 뉴스 공장’ 인터뷰에서 “(북한이 연락선 재개에 호응한 건) 식량 문제를 둘러싼 내부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을 지적했다. 정 전 장관은 “(북한 관영매체인) 《노동신문》 ‘조선중앙통신’ 등을 보면 농사 걱정을 굉장히 많이 한다. 기후 조건이 안 좋아 옥수수 껍질이 노랗게 타버릴 정도”라며 “금년 식량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 분명하기에 이런 문제를 풀어줄 상대는 남쪽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쪽 통일부 장관의 관계 회복 제안에 호응하면서 식량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에 필요한 식량은 한 해 기준 약 550만 톤으로, 작년에만 100만 톤이 부족했다. 농촌진흥청이 작년 12월 발표한 ‘2020년 북한 식량 작물 생산량’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북한에서 생산한 식량 작물은 총 440만 톤으로 전년(2019년) 대비 24만 톤이 줄었다. 특히 주식(主食)인 쌀 생산량이 가장 큰 폭으로 감소(전년 대비 9.8% 감소)했다. 미국 농무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북한 주민 10명 중 6명이 식량 부족 상황을 겪고 있다(2020년 기준 북한 주민 63.1%가 식량 섭취 부족)고 분석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북한 인구의 40%가량인 1030만 명이 영양실조 상태라고 보고 있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27일 ‘YTN’ 인터뷰에서 “(연락선 재개를 계기로) 북한은 코로나19로 인해 교역이 중단된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열어갈 것”이라며 “북한이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는 여러 가지 행보가 이어질 것이고 그러한 맥락에서 미국과의 대화도 시도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 센터장은 “만약 북한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진정성 있는 대화를 하지 않고 계속해서 ‘선(先)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면, 북한을 변화시키기가 쉽지 않다”며 “우리가 현 상황에서 (남북 관계 개선에) 너무 긍정적인 장밋빛 전망을 해서는 안 된다”고 조언했다.

미국 외교·안보 전문가들 역시 북한이 식량 등 외부 지원을 받고 국제적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해 연락선 복원에 합의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마크 배리 국제세계평화학술지 부편집장은 27일(현지 시각)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북한이) 국제사회에 식량이나 의료 지원을 요청할 때 오늘의 움직임(통신선 재개통)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 랜드연구소 정책 분석관도 이 매체에 “김정은은 식량 문제 해결을 위해 서울과의 소통을 꾀할 뿐 핵 문제에 있어서는 타협할 생각이 없다”고 전했다.

랄프 코사 미국 하와이 태평양포럼 대표는 “북한의 전술적(strategic) 움직임으로 보고 있다”며 “아마도 한국의 다음 선거에서 진보진영을 돕거나 미국이 더 빨리 (대화에) 나오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켄 고스 미국 해군분석센터 국장 또한 “북한은 8월에 있을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빌미로 긴장을 조성하고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맥카울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공화당 간사는 이날 ‘미국의소리(voa)’에 “북한의 합리적인 행동은 항상 조심스러운 낙관론의 근거”라며 “중요한 것은 북한 비핵화를 향한 실질적 진전”이라고 지적했다. 맥카울 간사는 “최근 역사를 보면 김정은 정권은 실질적인 협상보다는 이목을 끌기 위한 적대적인 행동을 위해 통신 연락선과 연락사무소를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