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6월 대북 전단 살포에 반발한 북한이 일방적으로 끊은 남북(南北) 연락선이 지난 27일 13개월 만에 공식 복원됐다. 북한은 왜 이 시점에 연락선 재개를 통해 대남 접촉에 나선 것일까. 남북공동연락사무소까지 무단 폭파한 북한이 왜 지금 전향적 태도를 보이며 연락선 복원에 동의한 것일까.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지난 4월부터 친서(親書)를 교환하며 경색된 남북 관계 회복을 위해 노력해왔다고 발표했지만, 의문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조선펍》은 28일 남북 연락선 복원의 시사점과 그 이면(裏面)에 숨겨진 배경, 즉 북한의 의도에 대해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게 물었다. 대북 문제와 국제 관계 전문가인 김 교수는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보스턴대 국제정치학 석사, 버지니아대 국제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국회·국방부·외교부 정책 자문위원, 대한민국 역사 박물관 편집위원장, 청와대 통일비서관을 거쳐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현재 유튜브 채널 ‘김영호 교수의 세상 읽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대한민국과 국제정치》 《미중 패권전쟁과 위기의 대한민국》 등이 있다. 이하 일문일답.
他國 외교관에게조차 생필품 지급 못하는 北
- 내부 사정이 어려운 북한이 난국 돌파용으로 남북 연락선 복원에 동의했다는 말이 나온다.
“식량난도 있고 코로나도 심각하다. 지금 중북(中北) 국경이 6개월 넘게 봉쇄돼 있지 않나.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도, 평양에 주재(駐在)하고 있는 타국(他國) 외교관들에게는 김정일이 물과 생필품을 공급했다고 하더라. 근데 현재 이들에게조차 생필품 공급이 안 될 정도로 경제난이 심각한 상황이다. 얼마 전까지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 외교관들이 평양을 떠났다. 남아 있는 건 중국·쿠바·러시아 등뿐이다. 이것 하나만 봐도 요즘 형편이 어려운 북한이 얼어붙은 남북 관계를 트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남북 연락선 재개에 나섰다고 볼 수 있다.”
- 북한이 이번 남북 연락선 재개를 빌미로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아마 여러 가지 경제적 지원 얘기가 나올 것 같다. 지원받을 목적으로 한국 쪽 문을 두드린 것 같다. 식량이나 백신이 대표적일 것이다. (관계 회복이 가속화되면) 궁극적으론 한국에 ‘미국을 설득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미북(美北) 대화를 통해 제재 완화를 노리기 위함이다. 미국은 지금 (북한의 어떤 행동 변화에도) ‘인센티브를 주지 않겠다’고 단언했지 않나. 북한으로서는 답답한 입장일 거다.”

7개 조건 내걸면 5개 거부하는 北, 코백스 지원 안 돼
- 만일 우리나라 등에서 국제기구를 통해 대북 식량 지원에 나설 경우 ‘인도적 지원’ 명목이면 문제가 없는 건가. 북한 정권의 전용(轉用) 가능성도 있지 않나.
“WFP(World Food Program, 세계 식량 계획: 유엔의 전문 기구로 식량 문제 국제 협력체)를 통해서 지원하고 (대북 제재를 가하는) 미국이 인도적이라고 판단하면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통일부도 관련 예산을 배정해놓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도 클린턴 정부부터 (아들) 부시 정부 때까지 지원해왔다. 그런 걸(대북 제재와 상관없이 받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북한은 계속 받고 싶어하는 거다. 전용 가능성은 존재하는 만큼, 국제기구의 철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그런데 알아보니까 지금 북한에는 국제기구에서 파견돼 모니터링을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더라. 백신만 해도 국제 방역 요원들이 들어가서 (제대로 접종하고 있는지) 봐야 하는 건데...”
- 정부가 코로나19 악화 상황에 몰린 북한에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국제 백신 공유 프로젝트)를 통해 백신을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북한에 ‘코백스’가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코백스 지원 조건으로 (사용 관리·감독 등) 행정 조건 7가지를 제시하면, 북한이 딱 2가지 정도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거부한다더라. 이건 국제기구로서는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어느 정도로 관련 절차를 받아들이느냐가 관건이다.”
임기 말 文의 대형 대북 이벤트 실현은 쉽지 않을 것
- 문재인 정권이 자신들의 대표적 치적(治績) 중 하나인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이번 연락선 복원을 계기로 식량·백신 지원은 물론 정상·고위급회담 등 ‘대형 대북 이벤트’까지 추진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야권 등 반문(反文) 진영에서는 ‘내년 대선에서의 정권 재창출을 노린 대북 쇼가 다시 시작됐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대선 국면에 대놓고 대북 이벤트를 하려는, 그런 의도가 분명히 보인다. 다만 실현은 쉽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권은 지금까지 북한이 기대한 만큼 무언가 보상을 제대로 준 적이 없다. 북한이 원하는 건 결국 제재 해제인데, 그건 미국이 가하는 것이라 문 정권은 북한을 위해 실질적으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니 북한으로서도 상당히 불만이 있을 거다. 김정은은 또 핵도 가지면서 (국제사회의) 지원도 받고 싶어하는, 양손에 다 떡을 쥐려고 하기 때문에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문 정권, 이제 시간도 얼마 안 남지 않았나.”

- 당장 폭파된 연락사무소 재건(再建)과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이벤트를 추진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아주 먼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산가족 상봉 같은 경우는 화상으로 할 수도 있지 않나. 북한도 뭘 받으려면 무언가를 또 안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자기들이 줄 수 있는 게 지금 뭐가 있나. 핵이나 미사일을 포기할 리는 없고, 결국 한국 여론을 감안해 이산가족 상봉 정도는 동의할 수도 있다. 문 정권도 이야기할 거다. ‘뭔가 하나는 줘야 한다’고. 정상회담이야, 지금 세 번이나 했는데도 아무것도 진전된 게 없지 않나. 쌀도 가고, 백신도 가고, 이산가족 화상 상봉도 하고 하면서 문 정권도 (경색된 남북 관계) 국면 전환을 하려고 할 것이다.”
北이 당연히 해야 할 일, 시혜 베풀어주는 것처럼 느껴선 안 돼
- 연락선은 작년 6월 북한이 일방적으로 끊은 거다. 그것도 자기네 독재 정권의 탄압에 신음하는 주민들에게 자유를 일깨워주기 위해, 우리나라 ‘북한 인권 단체’들이 대북 전단을 날린 것에 대해 반발하면서 끊었다. 그리고 이어서 우리나라 국민 혈세 수백억 원이 투입된 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했고, 북녘 바다에 떠밀려간 해수부 공무원까지 총격과 소각으로 참살(慘殺)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진정성 있는 사죄 표시도 없었고 되레 적반하장(賊反荷杖)으로 나왔다. 그러다가 자신들 형편이 어려워 대남 접촉을 재개하는 차원에서 연락선을 복원했다. 이게 진정 현 정권이 바라는 것처럼 ‘남북 관계’ 개선의 신호탄이자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사고가 나면 무슨 보상이나 사과를 해야 하는데, 북한은 일절 그런 게 없다. 북한이 당연히 해야 할 것을, 마치 그쪽이 ‘시혜를 베푸는 것’처럼 우리가 느껴서는 안 된다. 8월에 한미연합훈련이 예정돼 있는데, 정부도 ‘북한이 싫어하니까 하면 안 된다’는 식으로 입장을 밝히면 안 된다. 그건 한미 갈등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이번 연락선 복원을 한미훈련 중단과 연계시킬 수 있으니,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 對北 주도권 쥐어라
미북 대화도 좋고 남북 대화도 좋다. 다만 대화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대화를 위한 대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북핵 문제와 북한 주민 인권 문제가 해소되는 하나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이번에 복원된 연락선만 해도, 원래 남북 합의에 의해 개설돼 있는 거였다. 그걸 북한이 끊었다가 복원했는데 그게 무슨 큰일인 것처럼 구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지금까지 교류와 협력을 통한 대북 정책으로 통일을 추구해왔는데, 이제는 우리도 좀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북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상식을 가진 국민들은 ‘북한에 좀 질질 끌려다니지 말라’고 정권에 촉구한다. 차기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대북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우리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가 많은데, 왜 자꾸 끌려다니느냐.’ 어떤 대북 협상이든지 우리 정부가 주도권을 갖고 각종 레버리지를 활용해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