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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에 대비하라>, 김창준, 라온북(2016)
 한국이 최순실 수렁에 빠져 있는 사이에 미국 대선이 요동치더니, 드디어 트럼프가 당선됐다. 미국 대선 초기부터 트럼프를 ‘또라이’ 취급해 온 미국과 한국의 주류 언론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인 김창준 전 미연방하원의원은 일관되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현상에 대한 그의 분석은 그간 간간히 나온 미국의 정치현실을 직시하는 시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장이 사라진 후 일자리를 잃은 공업벨트의 노동자들, 소수민족이나 여성에 대한 우대정책들을 감수하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언행을 강요당해온 백인들의 불만이, ‘할 말은 하는’ 트럼프를 통해 표출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트럼프는 그동안 정치에 무관심했던 사람들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였다”면서 이것이 트럼프 파워의 바탕이라고 강조한다.
 
특별할 것이 없는 얘기 같지만, 이처럼 ‘특별할 것이 없는 얘기’를 한사코 외면해 온 한국의 주류 언론은 도대체 무엇인가 싶어, 언론계의 말석에 있는 입장에서 얼굴이 뜨거워진다.특히 “자기 지위에 대해 가지고 있는 노동자 계층의 불안감과 더 중요하게는 자식들이 본인들보다 잘살 거라는 건 꿈도 못 꾸고 오히려 더 어렵게 살 것이라는 엄청난 공포심을 제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데이비드 액설로드(오바마의 선거참모)의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경고인 것 같아 섬뜩하다.
 
한국언론에는 ‘또라이’의 ‘망언’ 정도로 보도되었던 트럼프의 정책들에 대해 저자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합법적인 이민의 길이 있는데도 불법적으로 미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은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며, 불법이민자들을 정치적으로 사면하는 것은 법과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것이 트럼프의 이민정책이라는 것이다.
 
미국 대선 방송토론이 시작되기 전, 저자는 트럼프와 클린턴의 공방전은 트럼프에게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도 기업경영에 관한 여러 의혹이 터져 나올 수 있지만 이는 사기업 운영에 대한 문제인 반면, 퍼스트 레이디 - 연방상원의원 - 국무장관으로 기득권 정치의 일원이었던 클린턴의 약점들은 공적 문제라는 것이다. 실제로 트럼프는 성추문 파문 등이 터져나왔지만 결국 수습된 반면, 클린턴의 이메일 문제는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선거에서는 방어해야 하는 입장이 늘 불리하다.”
 
우리에게 관심은 미국 정치판세에 대한 분석보다도 트럼프의 당선이 대한민국에 미칠 영향이다. 저자는 트럼프가 한미 FTA나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큰 문제는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다. 한미FTA는 쌀문제나 쇠고기문제를 제외하면 특별한 현안이 없고,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트럼프가 이미 한국이 방위비의 50% 가까이 분담하고 있는 현실을 알게 되면 양국 간 ‘거래’가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의 생각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 같다. 미국에서 오래 생활하고 미국 정치 무대에서 활동했던 저자의 눈에는 이성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한국에서는 ‘정서’의 문제가 될 수 있고, 좌익세력의 반미투쟁의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제관계나 북핵문제에 대해 트럼프가 적극적인 정책을 펼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우선주의’라고 해서 트럼프가 모든 국제관계에서 발을 빼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찌 보면 외교관계에 있어 손익관계를 보다 분명히 하자는 것일 수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거래의 달인’이었던 트펌프가 국제문제도 ‘거래’라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는 얘긴데, 이 역시 우리가 마냥 낙관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트럼프의 미국이 중국과 ‘거래’하는 과정에서 한국이 희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닉슨 정권 시절 미국이 중국과 거래를 트면서 월남(남베트남)을 희생시켰던 것처럼 말이다. 특히 내년 대선에서 한국에 ‘거래’는 모르고 ‘이념’만 머리에 꽉 찬 세력이 집권하면 미국과의 ‘거래’조차 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정권이 트럼프와 ‘거래’하는 시늉을 하다가 ‘이념’의 논리에 따라 판을 깨고 나오면, 그건 대한민국의 자살이 될 게 뻔하다.
 
더욱 걱정인 것은 그동안 한국 언론이 미국 대선에 대해 편향적인 보도를 해 온 결과 형성된 트럼프에 대한 굴절된 인식이다. 한국에서는 언론, 정치인, 관료, 국민들 할 것 없이 트럼프가 되면 한미관계는 파탄날 것처럼 생각하면서 ‘또라이 트럼프’보다는 힐러리 클린턴이 당선되기를 원하는 듯한 기류가 형성되어 있다. 그에 반하는 소리는 한국 사회에서는 소수다.
 
반면에 중국에서는 정부, 국민할 것 없이 트럼프에 대해 우호적이라고 한다. 중국정부는 인권이나 민주니 하는 성가신 소리를 해 온 민주당 정권과는 달리 무역역조 문제를 집중 거론하는 트럼프와는 ‘거래’가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에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또 한참 경제발전도상에 있는 중국 국민들도 중국에도 활발한 부동산 투자를 해서 친숙해 진 ‘성공한 사업가 트럼프’에 대해 우호적이라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그동안 트럼프의 ‘또라이 행각’에 대해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한다”고 한다.
 
저자는 “누가 당선될지 모르는데, 그렇게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 필요가 있는가?” “한미동맹 강화를 주장하는 것은 공화당이다. 이렇게 근본도 모르면서 그냥 막 기사나 논설을 쓰는 것은 언론의 도리가 아니다”라면서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 대한 인상만 안 좋아지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아픈 지적이다.
 
저자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허둥지둥하는 한국의 모습이 그대로 보여 안타깝다”면서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충고한다.미국 뿐 아니라 중국도, 일본도, ‘강한 지도자’를 중심으로 국가시스템을 재편하느라 여념이 없다. 하지만 한국은 3류 인생들이 얽힌 권력형 비리 스캔들로 정부가 사실상 붕괴되었다. 정신 바짝 차려도 시원찮을 판에,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조선이 이러다가 망했구나’하는 생각에 우울해 진다.
 
 기본적으로 저자와 편자(김원식)의 대담 형식이지만, 그동안 이번 미국 대선에 대한 미국과 국내 언론보도들을 다수 싣고 있어, 우리가 놓쳤던 미 대선 추이를 되돌아볼 수 있다. 트럼프 현상에 대한 분석 뿐 아니라 미국 정치의 현실과 원리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눈여겨 볼 만 한다.